얼마 전 지하철 차내에서 일어난 일이다. 앞자리에 앉은 청년이 나에게 "할아버지 앉으세요"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문득 벌써 자리 양보를 받아야 할 할아버지로 취급받나 싶은 서글픈 생각이 들어, 끝내 양보한 자리에 앉지 않았다.
사람들은 늙기 싫어한다. 그러기에 좀더 젊게 보이려고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얼마 전에 칠십이 넘은 잘 아는 할머니를 만나고 놀란 적이 있다. 지난날 뵈올 때보다 너무 젊게 보여 그 연유를 물으니, 남편보다 늙게 보이는 것 같아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얼굴의 주름살을 펴는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성형수술까지 하면서 젊게 보이려는 그 마음을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과연 연령이나 얼굴의 주름살이 늙음의 결정적인 요인일까? 늙음을 성형수술의 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막는 게 아니라 얼마동안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성형수술로 자신의 얼굴은 잠시 속일 수 있을 지 몰라도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늙는다는 것, 이것을 탓하며 잠시 얼굴을 숨긴다고 닥쳐올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그 슬픔이 가려지랴. 일시적인 수술이나 치장으로 그 슬픔의 깊이를 감추진 못하리라.
반면에, 얼굴은 늙어가지만 그 늙어가는 속에서 오히려 날마다 원숙을 만끽하고 보다 더 나은 영원한 내세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90세가 넘은 유형기 감독은 날마다 성경 원전과 씨름하다 성경 번역의 대업을 완료하여 세인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시인 롱펠로(H. W. Longfellow)는 80이 넘도록 감동적인 시를 써서 발표하였다. 그는 비결을 묻는 이에게 "사람도 나무처럼 보람있는 삶의 양분을 잘 섭취하면 계속 부불어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 중에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인생의 봄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삶의 보람이 없이 허무감이나 좌절감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젊은이라 할지라도 이미 인생의 가을을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바울은 겉사람은 후패하여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자신의 삶을 노래하였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에게 육신의 은퇴는 있을지라도 영혼의 은퇴는 있을 수 없다.
김의환 총장(칼빈대학교)
[김의환 칼럼] 늙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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