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칼럼]천주교가 발간한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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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한국 천주교 선교 220년만에 듣기에도 생소한 '천주교 전용 한글판 성경'이 한국 천주교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출간됐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승인 아래 2005년 9월 20일자로 이뤄진 이번 출간은 구약 히브리(Hebrew)어와 신약 헬라어(Greek) 원문으로 된 성경을 번역한 것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이름으로 출간된 역사적인 성경이다.

필자가 여기에 '역사적인 성경'이라는 말을 한 것은, 그동안 천주교 안에서 사복음서를 비롯, 개인역 성경 단편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1977년도에는 대한성서공회가 주관해서 신구교연합으로 공동번역 성경전서도 출판한 사실이 있었으나, 천주교 쪽에서 단독으로 성경번역 작업을 이렇게 훌륭하게 해낸 것은 처음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을 평신도들이 쉽게 볼 수 없도록 출간하지도 않고 평신도들에게 읽지 못하게 하는 교회가 천주교회요, 성경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읽고 연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는 교회가 개신교회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회는 전반부 100년간에 받은 혹독한 박해로 인해 성경을 번역한다거나 출판해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성경 전체는 아니어도 성경의 중요 대목들을 골라 초역을 한 소위 '사사성경(四史聖經)'을 간행하기도 하였고,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면서 성경의 여러부분을 발췌, 번역해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천년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여 천주교중앙협의회 산하 전국주교회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위하여 성경번역과 출간계획을 세우고, 지난 17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이번 성경출간의 쾌거를 이루어낸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천주교회가 성경전체를 번역해 단독으로 간행하게 된 동기는 물론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였지만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우리 개신교회와 함께 번역하고 출간한 '공동번역성경'에 있었다.

공동번역성경 출간에 있어서 천주교회 측에서 개신교회와 함께 성경번역 작업을 하게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77년 부활절에 대한성서공회(大韓聖書公會)에서 젊은 세대들을 위하여 신약 새번역을 간행했는데, 이 '새번역신약성서'를 보고 천주교회 측 학자들이 구약성경을 포함하여 신약까지 새롭게 공동으로 번역할 것을 제의한 것이었다.

대한성서공회는 즉각 이 제의를 받아들여 공동성경번역위원회를 구성, 성경을 공동번역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일을 막상 시작하고 보니 어려운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신명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성경 원전에는 하나님의 신명이 '야웨'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천주교회에서는 '하늘의 주인'이란 뜻의 '천주(天主)'로 쓰고 있었고 개신교회에서는 유일한 창조주이심을 강조하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숙의끝에 천주교 측 학자들은 '천주'라는 말을 양보하고 개신교 측 학자들은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양보하여 '하느님'이란 말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드디어 공동번역성경이 양측의 기대 속에 출판되었으나, 막상 공동번역성경 판매가 시작되자 또다른 난기류가 형성되었다.

개신교 측에서는 성경수집가들의 수집용, 목회자들의 설교참고용 이외에 공동번역성경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개신교 측 교단마다 사용불가 판정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성경 판매부수의 90% 이상을 가톨릭 측에서 구입해 가는 이상현상이 전개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조용하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천주교 측에서 불만의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재주는 곰이 하고 덕은 누가 보았다'는 속담처럼 신구교학자들이 땀흘려 같이 수고했으나 실제 금전적인 소득은 개신교단의 연합체인 대한성서공회만 얻게 된 것이다.

결과가 이와 같이 되니 천주교회 지도자들의 심기가 편할 리가 만무했다. 이후 천주교회가 200주년을 마감하고 새천년 시대에 접어든 시기, 천주교회 내 성서학자들과 주교회의에서 '천주교회 단독 성경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여러차례 준비모임 끝에 천주교회 최고 의결기관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승인을 거쳐 한국천주교회주교회의가 '교회법 제 825조'에 의거(2005, 춘계정기총회)해 안건을 처리하고, 최창무 주교회의 의장이 허가함으로 천주교 전용 한글판 성경의 역사적인 출간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현대국어 맞춤법에 맞도록 번역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한 이 성경은 서울에서는 가톨릭 출판사, 왜관에서는 분도출판사가 인쇄 및 제본작업 위탁을 받아 출판했다.

신구교의 교리적, 신학적 입장을 떠나 성경원전에 가까운 새로운 성경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또 하나의 새 성경이 출간된 것을 축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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