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대통령을 역임한 고르바초프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포함한 그의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사진액자 뒤에 숨겨두었던 성경을 꺼내 읽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당시는 공산주의 정권아래 성경을 읽는 것이 금지됐던 시기였다.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어린시절의 경험때문에 대통령이 된 뒤 제일 먼저 성경을 인쇄하고 전하고 또 마음대로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 이야기는 가족들이 함께 성경을 돌아가며 읽으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처럼 독서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며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가정이 될 수 있다. 성경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작이나 교양서적들을 함께 읽는 가정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필자의 경험 한 가지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신문을 보기 시작해 학창시절 용돈은 말할 것도 없고 군대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신문 보는 재미에 한달 봉급(당시 300원)을 몽땅 투자할 정도였다. 신문을 보는 것이 독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겠지만 내게는 신문 읽는 습관이 곧바로 독서하는 습관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필자의 가정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 대한성서공회에서 1961년 처음 발행한 한영대조 신약성경 한 권과 민중서관에서 발행한 포켓용 영한소사전 한 권을 품에 안고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여 제대하는 날까지 이를 읽고 또 읽었다. 이 성경을 날마다 가지고 다니면서 얼마나 읽었는지 가죽으로 된 표지를 두 번이나 교체할 정도였다. 제대 후 대학에 복학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들 셋을 두었어도 항상 성경을 보는 습관과 독서하는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필자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의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전자오락실이나 놀이터가 많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으례히 필자가 보다 접어놓은 신문이나 필자의 책상 위에 펼쳐놓은 성경을 비롯한 여러가지 교양서적들을 펼쳐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집에 돌아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책을 들고 둘러앉는 것이 가정의 평상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목회자라는 필자는 직업상 늘 설교준비를 위하여 책상에 성경과 각중 서적들을 펼쳐놓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필자의 가정에서 책은 별개의 물건이 아니라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고 서로 나누어 읽는 것이 기본인 존재였다. 아침이 되면 신문을 서로 먼저 보기위해 전쟁 아닌 전쟁이 이루어졌고, 아이들의 학교 숙제는 언제나 필자의 몫이 아니라 서재에 비치된 여러종류의 대백과사전들이었으며 이것이 아이들의 선생이자 과외교사가 되었다.
필자는 아들 셋을 키우면서 그 흔한 학원에도,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았으며 과외도 시켜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체험한 유아교육의 장(場)이라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다닌 교회학교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고등부가 전부였다. 아이들이 다녔던 교회학교에서의 교육과 가정예배 때마다 읽었던 성경은 아이들의 신앙적, 영적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 모두 다 잘 자라서 가정을 이루어 각자 직장생활을 하는데 신간서적이 나와 한 권 사주고 싶어 먼저 물어보면 이미 사거나 빌려서 읽었다는 대답을 자주 듣곤한다. 어떤 아이는 자주 필자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한두 권씩 필자의 서재에 있는 책을 가져가 읽고 반환하고 있다.
이와같은 일은 모두 필자의 자연스러운 독서습관에서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녀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녀들이 책과 가까워지게 하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 부모가 먼저 신문을 구독하거나 책을 읽으면 자녀들이 이를 함께 보게 되고 가족같의 대화가 이것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굳이 부모가 항상 신문이나 성경을 읽지 못하더라도 책상위에 항상 신문이나 성경이 펼쳐져 있으면 아이들도 자연히 이를 읽게 된다. 좋은 책을 부모가 사다주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녀들과 함께 종종 서점에 들려 자녀가 스스로 책을 선택하여 읽게 하면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종종 열차나 버스 혹은 전철을 타고 여행하면서 독서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볼 때 그 독서하는 사람의 모습이 남녀노소 할 것없이 어찌 그리 한결같이 어질게 보이고 교양있어 보이고 천사처럼 보이는지 모른다. 독서하는 이의 마음이 얼굴에 행복한 표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독서하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가정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어린시절 호롱불을 밝혀놓고 글을 읽는 선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추운 겨울이 되면 바깥 먼 곳으로부터 우렁차면서도 낭랑한 음성의 책읽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오늘도 필자는 아이들이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함을 느끼며 자녀들을 칭찬하며 살아간다. 깊어가는 이 겨울 밤 읽고 싶은 책 한 권 읽어보는 따스함을 스스로 소유해보면 어떨까?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박정규 칼럼] 독서하는 가정 행복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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