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칼럼] 말없이 날아간 두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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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은 들어봄직한 지명이다. 지금은 관광지로 발돋음 하여 전국의 여러 교회들이 외로운 섬에 천형병으로 알려진 한센씨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돌아보기 위해 앞다투어 방문하고 있지만 방문객들은 오히려 천형병을 앓고 있거나 치유된 형제자매들을 통해 오히려 은혜를 받고 돌아오고 있다.

육지에서 500여 미터 떨어져있는 이 섬의 모양이 사슴을 닮았다 해서 소록도(小鹿島)라 불린다. 그러나 그곳엔 일제 때부터 거리를 배회하는 한센인들을 무인도였던 이 아름다운 섬으로 몰아넣었다. 명분은 치료와 재활이었으나 당국의 학대와 천대를 면하지 못했던 눈물과 한숨이 가득한 비극의 섬이었다.

이렇게 강제로 입도(入島)한 인원이 5,000여명에 이르렀고 그들을 돌보는 의사 몇 명과 간호사 5명이 전부였다. 그러던 차에 1962년과 1966년에 오스트리아로부터 벽안의 두 천사(간호사) 수녀가 소록도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손길이 되고자 소록도에 입도하였으니 그들이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다.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간호학교를 나온 그들은 코리아 소록도라는 곳에서 간호사가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62년과 66년에 각기 한국땅을 밟게 되었던 것이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조국 오스트리아로부터 지원되는 약품과 지원금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Mariane & Magarett'라는 표찰이 붙은 진료실에서 지극정성 환자들을 돌보기는 귀국하기 전날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위해 오셨다'고 한 말씀의 실천자가 되어 작은 천사가 되고 작은 예수가 된 자요 작은 목자의 삶을 산 자들이라 하겠다.

가족과 친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들까지 천대하며 마을에서 쫓겨나 격리된 채 서러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참이웃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생명을 내 줄 수 있다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세상에 다시 없다'(요한복음 7:5~13)고 한 삶을 오롯이 살다간 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센씨 병자들과 함게 동고동락하며 친구가 되어 주었던 두 천사들이 헤어짐을 공식화 하지도 않고 그 흔하디 흔한 퇴직금 한푼도 챙기지 않고 홀연히 새벽 미명에 떠나버린 것이다. 그 이유인즉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부담되지 않게 그들과 헤어짐에 아쉬움을 더할까 하는 배려에서라니 이들이 천사가 아니고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는가?

이 사실이 중요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일제히 보도된 사진을 곰곰히 살펴보니 천사보다 더 빛나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가 71세, 마가레트 피사렉 수녀가 70세. 그들이 지난 21일 이 땅을 떠나며 남긴 편지 사연이 가슴에 아려온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기러기 마냥 저 하늘로 훨훨 날아갔다. 그것도 이른 새벽에 어떤 보상도 없이 누구의 배웅도 없이 조용히 지난 한 생을 소록도에 남긴 채 짐이라곤 달랑 낡은 여행가방 한 개가 전부였다.

두 천사 수녀가 섬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아쉬움과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아 버렸고 나이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성당에 모여 두 수녀 천사들을 위한 밤샘기도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으며 두 할머니 수녀가 떠난 자리엔 43년간 뿌린 사랑과 희생, 섬김과 보다듬던 자취만이 남아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과 교인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니 우리는 그들의 수고와 헌신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며 남은 과제 또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소식을 접하고 취재차 갔던 기자들을 기어히 물리치며 사진 한 장조차 찍는 것을 사절했단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할 뿐이라고 하였단다. 그들에게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10만원과 본국 수녀회에서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의 우유와 간식비로 한편 건강을 되찾아 고향으로 떠나가는 이들에게 노자(교통비)로 나누어 주었단다. 두 수녀들의 거처에 빨래를 해 빨랫줄에 걸어 놓은 것을 보면 하나같이 꽤맨 흔적이 여기저기에 있을 정도로 검소하고 검약하였단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몸이 피곤하고 부서지는 줄 모르고 환자들의 손과 발을 어루만져주고 보다듬었다니 하늘이 보낸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도에만 마더 테레사 수녀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아세아의 끝 코리아의 남쪽 끝 전남 고흥 소록도에도 서로 이름이 다른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레트 수녀가 마더 테레사의 정신을 지니고 와서 짧지 않은 43년간의 사랑의 천사가 되어 지상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오르내리며 이 민족의 상처를 돌보던 그들의 손길에서 묻어난 온기를 남아있는 소록도 한센씨 환우들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있기를 추운 세밑 성탄절에 두손 모아 빌어본다.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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