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한 방송국 PD가 어려운 시절에 겪었던 실화이다. 오래 전 그는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고 아내까지 도망을 가 버렸다. 인생에 있어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 후부터 그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세상을 저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적개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기에 대한 환멸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환멸의 시간이 거듭되자 그는 결국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는 부랑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된 그는 용산 역 근처에서 되는대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지냈다. 어느 날은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몹시 고팠다. 용산역 앞에 수많은 식당들이 있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밥 한술을 구걸하지 못했다. 남루한 행색의 부랑자를 반겨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자기 혐오와 환멸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바뀌어 갔다. 문전박대한 곳마다 밤에 몰래 찾아가 불이라도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는 용산 역 근처 어느 작은 골목에 있는 할머니네 국수집에 이르렀다. 주인할머니는 그의 남루한 차림새를 보고도 환하게 웃으면서 국수를 주었다. 국수를 먹으면서 돈을 내 놓으라고 하면 그대로 줄행랑을 놓을 심산이었다.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국수 그릇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삶은 국수와 국물을 한 가득 더 넣어 주었다. 그는 할머니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지만, 어차피 가진 돈이 없던 터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국물까지 비웠다. 빈 국수 그릇을 탁자위에 놓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허겁지겁 따라 나왔다. 큰일났다 싶어 냅다 뛰었다. 그런데 도망치는 그의 뒤통수를 향해 할머니는 이렇게 소리쳤다.
"뛰지 말어! 다쳐요!"
그는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뒤돌아봤을 때 할머니는 손까지 저으며 뛰지 말라고 연신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주저앉은 지 얼마 후에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자기혐오와 환멸, 타인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적개심에 빠져있는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하였다. 마침내 그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여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일화이지만 이러한 사례들이 내 가까운 이웃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 길 옆에 꾸부리고 행상을 하는 노인들 등 등. 나는 정녕 사랑의 바이러스를 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랑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이다. 명사의 사랑이 닫혀있는 사랑이라면 동사의 사랑은 열려있는 사랑이다. 명사의 사랑이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랑이라면 동사의 사랑은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이다. 동사의 사랑은 국수집 할머니의 한 마디 말과 같은 것이다. 사랑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랑은 자기를 위해 무언가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작은 정성, 아름다운 생각과 기쁨으로 봉사하는 사랑은 사람을 살리게 하고 세상을 바꾸는 사랑이다. 옛 속담 가운데 "한 마디의 친절한 말이 석 달 겨울을 따뜻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할머니의 따뜻한 국수 한 그릇과 말 한마디는 석 달 겨울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30년 인생을 바꾸어 성공하도록 만들었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은 나눔의 사랑이다. 그 나눔의 사랑은 지금은 방송국 PD로 성장한 한 사람을 수렁에서 건져냈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도 행복을 전해주었다. 나아가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도 행복을 전해 준 셈이다. 나눔은 시작이 비록 한 그릇 국수처럼 미약하게 보이지만, 마침내는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창대한 것이 된다. 나눔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김대응 집사(주식회사 브리앙산업 대표이사,극동방송 5분 칼럼, 명성교회)
[김대응 칼럼] 국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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