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3.1운동과 한국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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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35]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한국교회는 “참혹한 식민 통치 아래서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인들”이었다.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절망을 모르는 민족으로 살아남게 한 힘이 바로 한국교회 안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교회의 힘은 성서로부터 길어 올려진 것이었다. 성서의 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독교 신앙의식은 겨레사랑의 민족의식과 하나가 되어 세계도 깜짝 놀란 함성을 토해내었던 것이다. 3.1운동은 그런 교회의 역량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신앙이 민족운동의 형태로 발로되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당시 미국기독교연합회는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독립 시위에 참여했다는 말은 지금 한국에서 동의어가 되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삼일운동에 참여했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삼일운동은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가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발표됨으로써 점화되었다. 그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6명이 기독교계 인사였다. 이는 한국 기독교가 삼일운동의 준비단계와 그 전개과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당일 독립만세운동은 서울을 비롯해 평양, 선천, 원산, 의주 등 12곳에서, 모두 교회 내지는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이 독립만세운동은 3월 4일 경이 되자 전국적인 운동으로 파급되었다. 이 단계는 삼일운동의 민중화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독교의 역할은 특히 막중한 것이었다. 당시 천도교측에서 기독교측이 참여하지 않으면 거족적 독립운동이 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 기독교는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적 역량을 비축하고 있던 세력이었다. 이 민중화단계에서 비폭력 저항을 지향하던 독립만세운동은 폭력적 저항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강서사건은 3.1운동의 최대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제의 폭력에 항거하여 실력대결을 벌였던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 강서사건으로 사망자가 63명, 중상자가 20여명이 발생할 정도로 매우 격렬한 항쟁이었다. 3월 3일 강서군 소재의 사천교회(沙川敎會)의 목사 송현근은 130여명의 교인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에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 1사람이 즉사하고, 주동자 8명이 체포되었다. 이 일을 목격한 군중들은 격앙되기 시작했다. 이에 다음날 군중들은 인접지역의 원장(院場) 장날에 모였다. 그리고 이 날을 이용하여 원장교회 장로 차병규, 지석용, 임이걸 등이 주도한 만세운동에 합세했다. 그러자 시위대는 3,000여명으로 급속히 불어났다. 이에 시위대는 30세 이하의 결사대 40여명을 앞세우고 사천 헌병대로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고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일제 군경이 시위대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으나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쓰러진 동료의 시체를 넘고 넘으면서 발사하는 군경에게 대항했다. 그리고 사격을 가하던 군경 3명을 쓰러뜨리고 만세를 높이 불렀다.

이는 3.1운동이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지만 일제가 군경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폭력적 항거로 전환되는 사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실 3.1운동에 뒤따른 일제의 기독교에 대한 보복은 매우 가혹했다. 수많은 일제의 관리들이 교회당의 종탑을 파괴하고, 유리창은 한 장도 남겨놓지 않았으며, 모든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교회학교의 명부와 교회의 서류들을 파괴하였다. 심지어는 교회 직원들을 체포하고 옷을 벗긴 후 교회당 뜰에서 온갖 모욕을 주거나 구타하기가 일수였다.

화성 ‘제암리교회사건’은 3.1운동 당시 일제에 저질러진 최대의 만행사건의 하나였다. 이 사건은 만세시위가 막바지에 이른 그해 4월 15일 오후 2시경에 일어났다. 일단의 군인들이 제암리로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전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30여명의 교인들을 총칼로 위협하여 제암리교회에 집합시켰다. 이어 교인들의 손을 꽁꽁 묶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근 후 예배당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불 속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격을 가하여 사살하였다. 벌건 대낮에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외신으로 보도되었던 ‘서울의 십자가 학살사건’도 유명한 사건이다. 3월 9일 서울에서 일본군은 다수의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교회로 끌고 갔다. 그리고 십자가에 묶고는 “너희들은 기독교인이니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하면서 총검을 찔러 죽이는 잔인한 살상을 저질렀다. 이런 사건들은 단순히 교회나 몇몇 기독교인에 대한 학살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즉 이는 민족의 독립의지를 거족적인 항일운동으로 승화시켰던 교회에 대한 보복성 분풀이였던 것이다.

당시 기독교인은 20만 명이 약간 넘는 정도였다. 이는 당시 인국 1,600만명에 비하면 1.3%에 불과한 수치였다. 하지만 전체운동의 20% 이상의 역량을 발휘할 정도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삼일운동에 바친 민족적 정열과 항일투쟁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물론 삼일운동은 분명 종교적 운동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민족독립운동에 행동으로 뛰어들었다. 단지 일제 하에서 정당한 자치권의 확보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생결단, 우리의 독립”이었으며, “조선은 언제든지 조선 사람의 조선이 되게”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성서적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민족과 조국을 발견함으로써, 민족의 고난 받는 현실에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신앙과 용기를 가졌기에 가능했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가 비로소 민족의 종교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감리교 선교사 무어(J. Z. Moore)는 “독립운동, 그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은 조선 백성의 마음과 심정을 열어주었다. 지난 50년의 평범한 날들이 못했던 일을 한 셈이다. 새날이 다가왔다”라고 했던 것이다.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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