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기도서약서 운동과 교회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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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36]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한국교회는 한일합방 이후 소위 일제의 무단통치기간 동안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집회의 자유도, 교회설립의 자유도 없었다. 이 기간은 한국교회에는 시련의 시기였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문화통치를 표방한 일제가 종교정책을 다소 완화하면서 한국교회는 새로운 분위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한국교회는 당시의 상황을 “한국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지닌 특별한 시기”로, 그리고“한국인들을 복음화하기에 오늘날 보다 더 좋은 시기가 없다”고 인식했다 [MACKS, 1920, 84].

1910년대 후반 많은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쇠퇴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었다. 한일합방 이후 한국교회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18년 말, 남장로교 선교사 녹스(Robert Knox)는 지금 한국교회는 전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10여 년 전, 그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은 복음에 귀를 기울였으며 밤마다 교회당이 꽉 차고 은혜가 넘쳤다고 회상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전도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그래서 전도하러 나갔던 사람들은 낙심하여 더 이상 전도하러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사역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제 다시 “옛 방식의 부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KMF, 1919. 1].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장로교 선교사 벌(W. F. Bull, 부위겸)은 개인전도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 시대의 가장 급박한 과제는 개인전도이며, 이것은 과거보다 더욱 강력하게 실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전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영혼을 위한 뜨거운 사랑과 구령의 대가를 치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한국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는 기도가 절실하다고 보고, 그는 기도서약서(Covenant of Prayer) 운동을 전개했다.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 선교사에게 확대되었다 [KMF, 1919. 1]. <코리아 미션 필드>(KMF)도 이 운동에 동참하여, 1920년의 표어를 “기도와 부흥”(Prayer and Revival)으로 정하고 부흥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KMF 1920. 1].

3.1운동 이후 공허한 한국교회의 상황을 선교로 극복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대의 인식은 동양선교회의 한국 초대 감독인 존 토마스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는 1919년 6월 <동양선교사의 표준>(OMST)에서 ‘한국은 지금 특별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1운동 이후 한국인들은 마음이 심히 상한 상태이며,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빨리 사역자를 양성할 성서학원을 확장하여 전도에 활기를 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OMST, 1919. 7].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대대적인 전도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성결교에서는 '대거부락전도운동'(The Great Village Campaign), 감리교에서는 ‘백년 전진운동’(The Centenary Advance), 그리고 장로교에서는 '진흥운동'(The Forward Movement)이라고 불렀다. 그와 동시에 한국교회 제2의 부흥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불길은 남쪽에서부터 타올랐다. 이후 평양과 서울에서도 큰 부흥이 있었지만, 그 출발은 역시 경상도와 전라도였다. 남장로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기도운동이 일어났고, 경상도 현풍에서 본격적인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김익두 목사가 있었다.

김익두 목사는 경북 경산, 대구를 거쳐 부산과 김해에서도 집회를 인도했으며, 가는 곳마다 기적이 나타났다. 부산에서는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김해에서는 23년 된 혈루증 여인이 고침을 받았다. 그가 경상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것이다. 북장로교 선교사 톰스(J. U. S. Toms)는 경상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을 기술하면서 과거 1907년의 부흥에는 남쪽이 북쪽에 비해 많이 거두지 못했는데, 이제는 과거에 비해 많은 추수를 하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KMF, 1920. 7].

이 시기 누구보다 부흥을 열망했던 사람들은 남장로교 선교사들이다. 이에 광주지역의 교회들은 1919년 가을 김익두 목사를 초청하여 10일간 부흥회를 갖기로 했다. 이에 선교사들은 한국인들과 함께 1주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다. “시작부터 성령의 현존과 능력이 명백하였다. 김 목사는 불의 사자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능력 있게 말씀을 증거했다. 그는 매일 5회의 집회를 인도했는데 식사는 오직 2끼만 하였고, 기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이 잠자는 동안 그는 깨어 하늘 보좌에 중보기도를 했다”[KMF, 1920. 2).

남감리교의 구역인 송도에서도 이와 같은 부흥의 소식이 들려왔다. 선교사 윔스(C. N. Weems) 는 1919년 봄 이후 한국인들이 교회로 향하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 부흥운동은 한국인 지도자들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감리교연회에서 채택되어 송도지역을 덮는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12회 이상의 부흥집회가 계획되었고, 그 결과 이 지역에서 1,500명 이상의 구도자가 생겨났다 [KMF, 1920. 6].

하지만 부흥운동의 절정은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1920년 6월말, 평양의 일곱 교회가 연합하여 1주일간 장대현교회에서 부흥회를 개최했다. 강사는 김익두 목사였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진원지였던 평양은 냉랭해 졌고, 김린서의 표현대로 매우 위기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놀라왔으며, 동아일보가 “예수교가 평양성에 들어 와서 처음 보는 성황”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동아일보, 1920. 7. 3]. 특히 이 집회에서는 평양에 숭덕학교를 세우려는 목적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집회도중에 헌금을 하였는데 6만원이라는 거금이 모금되었다. 어떤 이는 1만원을 헌금하기도 했으며, 가진 것이 없는 여인들은 비녀와 월자(月子) 등을 바치기도 했다.

3.1운동 이후 한국교회의 전도운동과 부흥운동은 누적된 정체로 인한 위기의식과 새로운 시대를 기회로 인식하고, 그것들을 적극 활용한데서 촉발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또 다시 풍성한 결실을 맛보며 도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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