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칼럼] 이명직 목사의 성결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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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37]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이명직은 1920년대 초부터 성결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부흥의 초석을 마련한 사람이다. 그는 10대 후반에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거듭남의 체험을 한 것은 일본 동경성서학원에 유학 중이던 1910년경(21세)이었다. 함께 유학 중이던 이명헌의 간증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이명헌 형이 성서학원에 입학했다. 외롭고 적적했던 나는 형의 입학으로 육신적으로도 한없는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함께 모여 기도하며 형이 자기가 받은 은혜를 간증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심령에 검은 장막이 덮여 있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수 주간을 철야하고 금식하며 주 앞에서 기도하던 중, 나는 성신의 음성을 듣고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의 생각에 잘못된 간음이나 [사람을] 기만한 것이나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회개하였다. 동시에 예수께서 나의 구주가 되심을 비로소 알게 되었으며, 천국과 지옥이라는 장소가 있음도 알게 되었고, 미래의 운명도 깨닫게 되었다. 그때에 나의 심령은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되었으며,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였고, 진리의 새로운 광선은 나의 마음에 비취게 되었다. 그때에 나의 심령에 이루어진 주의 구원은 너무 분명하여 영원히 잊어버릴 수가 없다.”

이때부터 그는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은혜는 받기보다 유지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명직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복음전도관의 사역자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25세였던 1914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16년부터는 경성성서학원의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삼일운동 때에는 그도 사상가, 애국자, 지사가 되어 시국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때의 인심은 차라리 복음에 대한 설명보다도 사상의 발표나 피가 끓는 듯한 열변으로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는 것을 환영하였다." 그래서 이명직은 이 방면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많은 환영도 받았다[활천, (1924. 10): 38]. 겉으로 보기에 이는 분명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그는 거의 영적으로 파산된 형식적인 종교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때의 형편을 이렇게 적고 있다.

“전에 은혜를 받은 적이 있지만 도적맞은 지 오래고, 마귀의 불화살에 중독된 내가 무슨 교사의 자격이 있으며, 또한 무슨 선량하고 신령한 젖을 내어 후진을 양육하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겸손하고 정직하게 기도하여 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나의 경험을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의심의 깊은 골짜기와 자욱이 안개 낀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 얼마나 냉담하고 해골 같은 형상의 생애였는가. 성결치 못한 나는 형식을 꾸미고, 심령이 부패한 나는 표면만 단장하기를 힘썼다.”

하지만 “표면만 단장하는” 그러한 삶은 결코 지속될 수 없었다. 1920년 겨울, 결국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선교는 신문화의 전파와 동일시되어 왔다. 그래서 일부 신자들은 전통적인 남녀유별을 반대하고 보다 자유로운 이성교제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이명직에게도 일어났다. 그가 충남지방으로 집회를 갈 때에 제자였던 한 여전도자와 동행하게 되었다. 당시 전도여행에는 남자와 여자가 동행하였다. 남녀구별이 엄격하던 시대라 여자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여전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의 한 달에 걸쳐 함께 여행하면서 이 일이 스캔들로 와전되었다. 이때 이명직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정적인 잘못’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는 이것을 후회하고 당시 한국 감독이었던 길보른에게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였다. 물론 과거의 실패에 대해 통회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시는 그러한 부주의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21년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자신의 무력함과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 학생들의 사명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주께서 그의 심령의 세계를 보게 해 주셨던 것이다. 이에 그는 자신이 성결치 못하며, 능력도 없으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기도의 제목은 분명해졌다. 전에 기도할 때에는 학원, 선교회, 교사, 학생, 모든 교회 등 기도할 제목도 많고 매우 복잡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문제에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오직 성결을 실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는 성결교회의 전형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죄의 뿌리가 되는 부패성에 있으며, 문제의 해결은 바로 이 부패성의 제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명직 목사는 죄악의 뿌리가 제거되고, 성결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에 그는 골방문을 닫아걸고 주님을 붙잡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오직 “주님, 저에게 성결의 은혜를 주시든지, 사명을 거두어 가시든지 하옵소서. 저는 주의 뜻을 이루는 사역자가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라고 씨름하며 기도할 뿐이었다. 하루 밤을 지새우며 기도해도 별로 이상한 일이 없고, 이틀 밤에도 철야하며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흘째 되던 밤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며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주의 음성이 그에게 임하고, 주의 거룩하심을 보여 주셨다. “아! 그때 그 순간의 성령의 역사는 말로 다할 수 없다. 나는 그때에 성령에 충만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는 내가 타락한 후 처음의 영험(靈驗)이다. 한참동안 혼자서 울고, 웃고 하면서 춤추는 것이 술 취한 사람이 아니면 영락없이 미친 사람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성결은 윤리 이전의 종교적 체험이다. 오토(Rudolf Otto)의 표현처럼 ‘거룩’이란 ‘누미노제’(numinose), 곧 초월적인 것의 경험인 것이다. 윤리는 바로 초월을 경험한 사람에게 따라오는 것이다.

허명섭 박사(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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