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장기려 박사(1911~1995)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가 떠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를 기리는 모임이 서울에서, 부산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 수 없다. 경성의학교 지망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서약대로 평생을 살다 간 사람, 장기려 박사의 삶은 이 혼란하고 소망없는 세상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 학교에 들어가게 해 준다면 의사를 한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그의 서약은 그의 삶이었고 철학이었고 신앙이었다.
장기려 박사의 친구인 소설가 이광수 선생이 그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캐릭터를 완성할 때 장기려 박사를 그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거니와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이광수 선생이 살아있을 때 장기려 박사를 향해 "자네 천사지?"라고 했더니, 신앙심이 좋았던 장기려 박사는 자신을 천사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도 황송스러워 "얘끼 이 사람아, 나 같은 죄인이 감히 천사라니 당치도 않다네"하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광수 선생이 말하기를 "아니면 바보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장기려 박사가 병원장으로 재직할 때 있었던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경남 어느 농촌에 살고 있던 아낙네가 중병에 걸려 장 박사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였다. 몇 차례 수술끝에 겨우 원기를 찾아 건강해져 갔으나 산더미 같은 수술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이 여인은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번은 용기를 내어 병원장실을 찾았다.
"원장님! 죽을뻔한 환자를 이렇게 보살펴 주시고 생명을 구해 주셨는데 불행히도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라 수술비를 낼 형편이 못 됩니다. 퇴원을 할 수도 없고 여기서 살 수도 없으니 이 처지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인이 이렇게 하소연을 했더니 장 박사는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면서 그의 손목을 잡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함께 기도를 드린 후에 "언제 기회를 봐서 환자복을 갈아입고 병원을 탈출하라"고 했다. 이 여인은 이러한 장 박사의 배려로 퇴원할 수 있었다. 이광수 선생이 아니더라도 이런 장 박사의 삶을 보고 '바보'라는 애칭을 안 붙일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그는 '예수 잘 믿는 진짜 바보'였다.
뿐만 아니라 남북 적십자사 회담의 성공적인 결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느 언론인이 그를 찾아가 "선생님께서는 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태연스럽게도 "내가 먼저 신청하면 나보다 더 급히 만나야 할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라고 했다니 장 박사야말로 '사랑의 천사'요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化身)'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신앙인이었던 장 박사야말로 주님을 향한 순결과 청빈, 박애의 삶을 살다간 '바보 천사'였다.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고, 치료비가 모자라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병원비를 자기의 월급으로 대납해 병원 뒷문으로 나가게 하는 그의 거듭되는 행동을 보고 '이러다간 병원이 거덜나지 않을까'하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10층 병원 꼭대기 24평짜리 옥탑방에 살면서 묵묵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장 박사였다.
그가 북한에 있을 때, 김일성 대학 의과대학으로부터 교수초빙을 받았을 때에도 '주일에는 근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을 정도로 신앙 위주의 삶을 살았고 때로는 병원장의 자리에서 외과과장으로 강등되는 서러움도 겪었으나, 그 기간을 신앙의 연단 기회로 삼아 참 신앙인 의사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가 생시에 후학들에게 늘 했던 말대로, 그는 그가 죽은 후 '의사'란 말보다도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고요히 잠든 그의 묘석에는 그의 유언대로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란 아홉자의 한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사랑과 섬김 그리고 희생의 정신으로 이웃을 위하여 사는 것이 곧 국가와 민족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이요,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삶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장 박사였다.
사람됨의 참가치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있다면, 또 그가 죽은 후 그를 사모하고 그의 정신을 기리는 자들이 얼마인가에 있다면, 장기려 박사는 성서적인 삶을 살고 믿음을 지킨 참신앙인이자 '바보 천사'의 모습으로 오늘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교회의 자랑이요, 이 민족의 희망이라 하겠다.
박정규 박사(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박정규 칼럼] 바보 천사로 살다간 장기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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