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정충영 명예교수가 보내는 남산편지
미국 권투선수 잭 존슨은 20세기 초반 지구상에서 가장 미움 받은 흑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가난 탈출을 위해 권투를 시작한 존슨은 ‘무적의 주먹’으로 승승장구하며 1903년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냈지만 당시 챔피언인 제임스 제프리스는 “흑인과 싸울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5년 뒤에 기회가 왔습니다. 1908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헤비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 흑인 존슨은 당시 챔피언 토미 번스를 꺾고 역사상 첫 흑인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흑인 챔피언’이 백인에게는 큰 치욕을 안겨준 것입니다. 기고만장한 존슨은 백인들의 푸대접이 거세어지자 이번에는 백인들의 기를 더욱 꺾어 놓겠다는 듯 백인전용물이었던 카레이스에 도전했습니다. 시속 210km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해 1910년대 최고 스타레이서인 바니 올드필드는 이 도전을 처음에 무시해 버렸으나 백인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드디어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1910년 10월25일 뉴욕 브루클린에 있던 전장 7km의 트랙에서 7만 명이 넘는 흑백 인종들의 호기심과 적대감 속에서 벌어졌습니다. 10라운드게임에서 첫 라운드부터 뒤떨어진 존슨은 4라운드에 접어들자 완전히 한 라운드나 처졌고 라운드에서는 두 라운드반이나 뒤진 존슨 옆을 올드필드가 나란히 달리며 승리의 미소를 띄워 영화사에서 촬영하도록 포즈까지 취했습니다.
이틀 날 아침 각 신문에서는 앞 다투어 톱기사로 바니 올드필드가 ‘백인을 구하다’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나 존슨은 여전히 백인의 눈에 가시였습니다.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생활뿐만 아니라 그의 백인 애인들 때문이었다. 여배우 매 웨스트를 비롯해 백인 여성들과 그와 데이트를 즐겼고 백인 여성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1913년 존슨은 백인 여성에게 일리노이 주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줬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매춘부가 주 경계를 넘어 여행하는 것을 금지한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습니다. 판결 직후 그는 해외로 도망하여 쿠바에서 백인 선수 제스 윌라드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고 1920년 미국에 돌아오자 바로 체포돼 1년간 복역했습니다. 그러나 출소 후 그의 화려한 경력도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1913년의 그 판결 후 90여 년이 지난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 판결이 편견 때문이라 보고 그를 사후 사면했습니다. 흑인 챔피언 존슨은 벌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흑인에 대한 백인사회의 부끄러운 편견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도 알거나 모르는 수많은 편견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하나 편견을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20-21]
정충영 박사(경북대학교 명예교수, 현 대구도시가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