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한국교회와 농촌 살리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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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45]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농촌문제는 1920년대 우리나라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였다. 전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했으며, 그 가운데 80%가 소작농이었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 80%가 문맹이었고, 농민들은 이자가 비싼 빚을 얻어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총생산고의 30-40%에 해당하는 이자를 고리대금업자에게 지불해야 할 정도로 마치 “고리대금업자의 노예”처럼 살았다.

여기에는 한반도를 자신들의 식량공급지로 삼으려는 일제의 계략이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했다. 일제는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 9월부터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여 상당수의 토지를 총독부의 소유로 복속시켰으며, 그 와중에 한국의 자작농들은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920년대 접어들면서 일제는 다시 산미증산계획을 추진하고, 증산된 대부분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이에 한국의 농민들은 오랜 기간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고, 절대빈곤의 악순환에 처해 있었다. 농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당시 한국의 사정을 고려할 때, 이는 한국 경제와 농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따라서 농촌문제는 “조선이 당면한 일대(一大) 난문제(難問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농촌문제를 남의 문제로만 방관할 수 없었다. 한국교회 또한 이러한 피해의 직접적인 당사자였다. 1927년 한국의 농촌현실을 조사 연구했던 브루너(Edmund S. Brunner) 교수가 [한국의 농촌](Rural Korea)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교회는 대부분이 도시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한국교회는 73%가 시골교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적으로 한국의 농촌과 교회는 양분될 수 없었으며, 농촌경제의 위기는 농촌교회의 피폐로, 이는 곧 한국교회의 기저를 흔드는 중대한 문제로 이어졌다. 즉, 농촌문제는 한국교회의 ‘현재 및 장래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농촌운동을 시작했다. 한국교회의 농촌살리기운동은 YMCA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당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포진하고 있던 YMCA는 사회주의자들의 농민운동과 반기독교운동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의 실력양성운동에 영향을 받아 1925년 1월에 농촌부를 두고 농촌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1928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 등도 농촌교회의 피폐와 교세의 감소, 1928년 4월에 열린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IMC) 등에 자극을 받고 농촌운동에 착수했다.

먼저, 한국교회는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던 <기독신보>에 농촌운동의 필요성과 방법론에 관한 사설과 기고를 자주 실어 분위기를 고조했다. 특히 1928년 10월부터는 ‘농촌난’을 신설하여 농업기술과 농촌경제에 관한 전문가의 글을 연재하였다. 그리고 1929년 2월에는 YMCA의 <농촌청년>, 5월에는 장로교회의 <농민생활> 등 농민을 위한 전문잡지를 발행하여 농촌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향상을 목표로 한 운동이었다. 물론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민족운동의 차원에서 이해되기도 했다. 그래서 혹자는 “토지를 잃어버리는 것은 정치상 독립권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라며, 토지를 파는 것은 조선민족의 장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처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기독신보] 1926. 6 30).

하지만 이 와중에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종교운동을 농촌운동의 첫걸음으로 삼고자 했다. 따라서 농촌운동의 정신적·도덕적 측면이 매우 강조되었다. 곧, “농촌사업의 주요 목적은 정신과 문화와 경제 향상”에 있었으며, 농사개량, 생활조직, 정신갱생이 농촌사업의 3대 강령이었다. 이처럼 한국교회가 농촌살리기운동을 전개하면서 정신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정신상의 기초가 없는 경제운동은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대체로 문맹퇴치운동(계몽운동), 단체조직운동(협동조합운동), 농사개량운동 등을 중추적인 사업으로 삼았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시행된 사업은 농민교육, 특히 문맹퇴치운동이었다. 이는 소수 지식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농민 스스로를 장차 농촌운동을 주도할 농촌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한 준비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농우회, 농무회, 진흥회, 협동조합 등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농촌운동 단체들이었다. 특히 협동조합 설립은 YMCA 농촌사업에서 두드러졌는데, 1931년에는 약 2백여개를 헤아릴 정도였다.

이렇게 활발하게 전개되던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1930년대 중반부터 일제의 탄압과 재정적인 문제 등 교회 내부의 반대에 부딪혀 각 농촌부가 해산되면서 와해되었다. 하지만 이런 농촌운동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농촌운동은 같은 시기의 절제운동과 함께 한국교회의 인력과 조직, 매체와 시설 등이 총동원된 초교파적인 대대적인 연합운동이었다. 특히 농촌운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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