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53]
“회개하지 않으면 일본은 유황불로 망한다.”
1939년 3월 25일, 일본 열도와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교회의 신자 세 사람이 제74회 일본제국회의가 열리던 회의장에 들어가 신사참배강요에 항의하며, ‘일본제국은 회개하고 폭정을 철회하라.…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유황불로 패망한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단상을 향해 던졌던 것이다. 그 일로 종교통제를 골자로 하는 ‘종교단체법안’을 심의하던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그들은 그 자리에서 연행되었다. 이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그 세 사람은 바로 박관준 장로와 그의 아들 박창영 선생, 안이숙 선생이었다.
성치도 않는 몸으로 그들과 함께 했던 안이숙(1907-1997)은 “실격된 순교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의 순교자적 영성은 선천 보성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공개적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당시 한국교회 주류는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의 결의를 마지막으로 신사참배를 공식화하고 철저히 일제에 순응하며 유린당하는 상태였다. 따라서 보성여학교의 신사참배 거부신앙의 보루였던 그녀의 행동은 일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로 인해 그녀는 피난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 여정은 안이숙을 정금같은 십자가의 정병으로 세우려는 주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는 고백 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단의 풀무를 지나던 어느 날 그녀는 기도 중에 “평양성으로 가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순종했다.
평양역에 도착한 그녀는 전쟁터로 끌려가는 일본의 젊은 군인들이 가득실려 있는 북행 급행열차를 보게 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악’하고 크게 소리지를 뻔하였다. 그 군인들 전부가 송장이 되어 영원한 지옥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의 마음에는 “아무 말 없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던져지는” 그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 주고 싶은 심정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이 민족의 원수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간절히 부르짖었다. “오, 주님이시여! 저 많은 영혼들이 매일매일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일본인 지도자들에게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누가 그 강력한 일본 군부와 정부 지도자들에게 가서 이 중대한 사실을 경고하고 올바르게 인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네가 하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안이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평양의 지하교회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녀가 묵고 있던 집에 한복차림의 한 노인이 불쑥 찾아왔다. 그리고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박관준 장로요, 주님께서 선생을 찾아가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이렇게 주님께서 데려다 주신 것입니다.” 박관준은 평남 개천에서 ‘십자의원’을 개업하고 있던 의사이며 장로였다. 그는 1936년부터 수차에 걸쳐 총독에게 청원서와 경고문을 보내어 신사참배 강요의 부당성을 경고하다가 잡혀가 수없이 고생을 당했으나 노인이라고 해서 특별 방면된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교회와 민족의 현실을 아파하면서 기도하던 중, “일본이 회개하지 않으면 유황불을 비와 같이 쏟아 내려서 멸망시키겠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요나가 니느웨로 갔던 것처럼 자기도 일본으로 가서 일본정부와 고관들에게 경고하고 싶었지만 일본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어 ‘어찌하오리이까?’하고 기도하던 중이었다. 그때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정병을 뽑는다. 평양으로 가서 안 선생을 만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여기에 순종하여 무작정 평양으로 나왔는데 주께서 안이숙이 머물던 집으로 그를 이끄셨던 것이다.
박관준 장로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선명히 깨닫게 되었지만, 선뜻 결심을 못하고 변명에 변명을 더하며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다. 이름도 경험도 없는 약한 믿음을 가진 평신도다. 이 땅에는 그 얼마나 경력이 많고 훌륭한 부흥가와 학식많은 유명한 목사가 많은가. 설마 하나님이 나같이 나약한 여자를 가라고 보내실까? … 하나님이 진정으로 일본을 경고하시려면 합당한 자를 일으키실 것이다.”
이처럼 안이숙은 결심을 못한 채 매일 방황하고 기도하면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그녀는 밤새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우연히 “예수 천당”하고 외치고 있던 한 백발의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70세가 넘은 늙은 주의 종 최봉석(최권능) 목사였다. 당시 예수를 진실히 믿는 모든 사람들은 잡혀가고 그렇지 않은 성도들은 산으로 들로 도망 다니고 숨도 크게 못 쉬는 험악한 시대였는데, 길거리에서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안이숙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전도이며, 일본에 경고하라는 것이 곧 전도하라’는 사명임을 새삼 깨달게 되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가해질 잔혹한 고문과 그에 굴복하여 자신이 주님을 배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낙심되어 선뜻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 몸에는 신열과 폐병 증세 등 심상치 않은 병세가 나타났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했으나 병은 낫지 않고 더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차라리 병으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주님에게 순종해서 매 맞아 죽기로 하고 일본으로 가서 경고를 하는 것이 어떠냐?”하고 도전했다. 이에 안이숙은 “어머니, 주님 말씀에 순종하겠어요. 일본으로 가다가 차 안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떠나도록 하겠어요”라고 일어섰다. 그리고 박관준 장로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그것을 쳐서 외치는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경고대로 일본은 20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로 소멸되었고, 현인신(現人神)으로 경배를 받으며 구름 위까지 높이 들리던 일본 왕 히로히토는 세계 인류에게 비참한 목소리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던 것이다: “나는 신(神)이 아니고 사람이외다.”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