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천황 이데올로기와 신사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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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55]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한국교회는 1930년대 중반 이후 아주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련은 결국 교회의 변절과 훼절로 이어지면서 교회의 본질 자체를 망실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그 시작과 중심에는 신사참배 문제가 있었다. 물론 일제는 처음부터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식민통치의 핵으로 삼았다. 일제는 정치∙군사적 강압, 경제적 수탈, 종교∙사상적 지배 등 한반도에 대한 총체적인 통치를 획책했으며, 그 모든 것들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충직한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동화정책으로 수렴되었다.

사실 천황제는 일본이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국민사상통합을 이루기 위해 고안된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였다. 즉 천황의 권위를 신성화∙절대화하고, 그것을 통치에 이용함으로써 국민의 사상통일을 이룩하고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얻어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이는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보다 강화되었으며 자국민뿐 아니라 식민지에도 강요하게 되었다.

한편,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신도(神道)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신도는 명치유신(1868)을 전후해 천황을 절대신으로 하는 천황제 국가의 지도이념과 지배통치의 원리로 채택되었다. 이후 신도는 국수적 토착종교로서 일본 당국의 보호와 지원 하에 급속히 성장하며 국교적 지위를 구축해 갔다. 1871년 일본 당국은 신사를 국가의 종사(宗社)로 하고 사격제도(社格制度)를 마련하여 신사에 공적 지위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신도 국교화정책은 내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자 일본 당국은 1882년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신사비종교론(神社非宗敎論)과 국가신도 초종교론(超宗敎論)으로, 곧 제사와 종교의 분리정책이다. 그 요지는 국교화를 추진했던 신도를 국가신도(國家神道)와 교파신도(敎派神道)로 구별하고, 국가신도를 초종교의 위치, 곧 최고의 권위를 지닌 국가제사로 승격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신도의 종교성을 표면적으로 위장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천황제는 ‘종교 위의 종교’를 추구했던 명백한 종교체제였기 때문이다.

신사참배를 포함한 일제 말기의 일련의 탄압들은 천황을 종교적 권위의 정점으로 보려는 이러한 시도의 단적인 예이다. 전시체제 하에서 일제는 기독교인들에게 ‘천황의 신성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심문을 끈질기게 계속했다. 이에 대해 유일신 신앙과 재림사상을 강하게 믿고 있었던 성결교, 동아기독교(침례교), 여호와증인, 안식교와 같은 그룹들은 완강히 천황의 신성을 부인했다. 그 결과 이들 그룹들은 가장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으며, 국체변혁이라는 가장 무거운 죄로 추궁당하다가 해산당해야 했다. 이는 천황제가 갖는 종교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특정한 인간을 신격화하고 국가권력을 절대시했던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그 본질상 기독교와 조화∙병존할 수 없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통이던 남장로교선교부의 총무 풀턴(Darby Fulton)이 “신사참배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근본 문제와 관계가 되는 것이다. 즉 유일신이냐 다신론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일제 총독부와 이를 거부하는 한국교회 간에는 종교적∙사상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도 구조적으로 갈등 관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양자 간의 이러한 관계는 일제가 1931년 9월의 만주사변을 필두로 대륙 침략전쟁을 일으키면서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일제는 침략전쟁의 승리를 위해 한국인들의 철저한 정신개조와 복종에 주력하게 되었고, 이것이 신사참배 강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제가 신사참배거부를 빌미로 한국교회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한 것이 ‘평양 기독교계 사립학교장 신사참배거부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일제가 기독교 학교에 대한 이전의 회유책을 포기하고 강경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5년 11월 14일 평안남도 지사는 도내 공사립학교장 회의를 소집하고 개회 벽두에 평양신사 참배를 요구했다. 하지만 숭실학교장 매큔(G. S. McCune)과 숭의여학교장 대리 정익성 등은 신사참배는 기독교인의 신앙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거부했다.

총독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신사참배 거부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금후 학교장과 학생들의 신사참배 여부를 회답하도록 각 학교에 시달했다. 그리고 그 회답 여부에 따라 관련자의 학교장직을 파면하고 강제 폐교도 불사하겠다는 방침도 통고했다. 하지만 북장로교선교부는 그 해 12월에 있었던 실행위원회 모임에서 신사참배 거부를 가결했다. 이에 총독부는 매큔과 스누크(V. L. Snook)를 교장직에서 파면하고, 끝까지 참배를 거부하는 학교는 폐교한다는 방침을 시달했다.

이런 방침은 1936년 8월에 미나미 총독이 부임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미나미 총독의 통치방침은 “국체관념의 함양과 일본국민의 양성”이었으며, “황국신민이라는 근본정신에 배치되는 종교는 절대로 그 존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총독부는 신사참배 거부학교는 무조건 폐교한다는 정책을 강행하였다. 이를 위해 그 해 10월에는 무장 경관들이 기독교 학교에 뛰어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에 대한 각 선교부의 반응은 달랐다. 하나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 행위이므로 철저히 거부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남장로교 및 호주장로교선교부 그리고 대부분의 북장로교선교부가 여기에 속했다. 다른 하나는 신사참배 행위에 비록 종교적 요소가 있다고 할지라도 학교를 살리기 위해 이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연희전문학교의 언더우드가 그 대표적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처음부터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순전히 국민적 의례라는 일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경우로, 감리교 및 캐나다연합선교부, 그리고 한국천주교회가 여기에 속한다. 이처럼 신사참배에 대한 상반적인 입장은 이후 한국교회의 ‘이질화현상’을 가속시키는 주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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