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신사참배 반대와 주기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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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56]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1938년 9월 10일, 장로교가 제 27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면서 신사참배 논쟁은 일본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한 결과는 그해 2월에 교세가 가장 강했던 평북노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면서 예견된 것이었다. 이는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이미 9월 총회 이전에 신사 앞에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우상숭배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다. 신사참배가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의식이라는 감언이설은 어디까지나 현실 타협론자나 순응론자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신앙 양심에 충실하고자 했던 신사참배 반대자들에게는 그러한 감언이설이 독약에 불과한 것이었다.

주기철(1897-1944)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관련해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신사참배에 반대한다고 네 차례나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당시 일제의 고문은 잔혹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당시 대다수의 지도자들이 어쩔 수 없이 일제에 순응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일제의 잔혹한 고문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단번에 순교의 칼날을 내민다면 그래도 해 볼 만하지만 목숨은 끊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끝없이 가해지는 잔혹한 고문은 생각만 해도 끔직하고 몸서리쳐지는 것이었다. 주 목사는 그러한 박해 가운데서도 결코 자신의 신앙을 꺾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순교자적 영성을 가진 신앙인은 아니었다. 본래 그는 민족주의 근대교육을 통해 ‘세상에 진출’하려던 사람이었다. 이는 경남 웅천의 개통학교, 평양의 오산학교, 조선예수교대학교(연희전문학교)로 이어지는 그의 교육 배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들 모두는 민족계몽과 민족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학교들이다.

하지만 진학 1년 만에 대학을 중퇴하게 되면서 그의 계획은 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계획이 끝나는 자리에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된다던가! 거기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섭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낙향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의 실존을 깊이 체험하게 된 것이다.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한 후, 그는 어려운 중에도 가정을 살피며, 교회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 결과 웅천교회의 집사로 피택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신앙생활은 어딘지 모르게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 같았다. 이는 그가 가끔 “술 취한” 상태로 “강단에서 설교”할 정도였다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에도 삶의 일대 전환점이 찾아왔다. 1920년 9월에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렸던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가 그 계기가 되었다. 부흥회에 참석하던 그는 새벽시간에 ‘성신을 받으라’는 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듣는 중에 갑자기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여러 가지 죄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가운데 특히 술 취했던 죄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동시에 성령께서 그에게 강력하게 임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통회 자복했다. 소위 중생의 체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그는 2개월 후, 웅천교회에서 열렸던 김익두 목사 초청사경회에서도 큰 은혜를 받았다. 이제 그는 교육을 통해 학습된 신앙인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경험한 체득된 신앙인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목회자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는 초량교회와 마산교회를 거쳐 산정현교회로 부임했다. 그때가 1936년 7월로 신사참배에 대한 분분한 의견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다. 이 와중에 그를 기다린 것은 시련과 고난이었다. 물론 그것은 당시 우리 민족과 교회가 부딪쳐야 했던 역사적 실존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4차에 걸쳐 검속되었다. 제 1차 검속(1938/4-1938/6)은 신사참배 강요의 분기점에, 제 2차 검속(1938/8-1939/1)은 장로교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을 앞둔 시기에 농우회사건 연루혐의자로, 제 3차 검속(1939/10-1940/4)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절정기에, 그리고 마지막 검속(1940/9-1944/4)은 일제가 신사참배 반대자들을 일시에 검거할 때이다.

제 2차 검속에서 석방된 후, 주 목사는 산정현교회에서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둘째, 장기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셋째,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섯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이는 마치 그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유언한다는 것과 같은 설교였다. 이 설교를 들은 산정현교회의 신자들은 모두 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설교가 있은 후, 일제는 주 목사에게 3개월 내에 목사직을 사면하라고 협박했다. 그러면서 목사직을 사면하면 신사참배는 강요하지 않겠다는 타협안도 내놓았다. 그리고 어느 주일 아침, 일제 경찰대는 산정현교회당을 포위하고 그에게 “오늘부터 설교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주 목사는 “나는 설교권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 둘 것이오, 내 설교권은 경찰에서 받은 것이 아닌즉 경찰서에서 하지 말라고 한다고 안할 수는 없소”라고 응수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설교하면 체포하겠소”라고 최후의 통첩을 가했다. 이에 주 목사는 “설교하는 것은 내 할 일이오, 체포하는 것은 경찰이 할 일이오. [그러니] 나는 내 할 일을 하겠소”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는 며칠 후 연행되었다. 일제의 요구를 수용하여 평안히 살기보다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한편, 그는 1940년 9월에 검거된 후 1944년 4월 21일에 순교했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그가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신앙 때문이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순교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다. 이것은 주 목사가 작사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영문 밖의 길’이라는 찬송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찬송 3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눈물 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십자가의 길은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신앙이란 어차피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이며 그분과 함께 독보(獨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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