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양반이 머슴 섬겼던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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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57]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기독교의 복음은 한국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전통과 숙명이라는 철옹성 안에 꼭꼭 숨어 있던 한국사회가 기독교 복음에 노출되면서 조금씩 문을 열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밖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소수자에게 온갖 특혜를 집중시키는 기재(器材)였던 신분의 벽은 복음의 진수를 맛본 사람들에게 의해 허물어져 갔다.

전북 김제에 있는 ‘ㄱ’자 교회로 유명한 금산교회의 초기 역사에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이야기가 있다. 불교의 오래된 사찰들이 많고 증산교와 같은 소위 민족종교들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김제에 기독교의 복음이 유입된 것은 1905년이다. 이는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 B. Tate, 최의덕)와 용화마을의 양반지주이자 마방(馬房)의 주인이던 조덕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조덕삼은 마방에 묵고 있던 테이트를 청하여 복음을 듣고, 자신의 사랑채를 예배처소로 내놓았는데, 이것이 금산교회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조덕삼은 집안 식구뿐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중에는 마부 이자익(1879-1957)도 있었다.

이후 예수에게 붙들린 조덕삼과 이자익은 힘을 모아 금산교회를 세우는데 진력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주인과 머슴이 합력했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두 사람은 1907년에 함께 금산교회의 영수로 임명되었고, 금산교회는 그해에 독노회 전라대리회의 허락을 얻어 장로 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때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 뜻밖이었다. 마을의 지주였던 조덕삼 영수를 제치고 그의 마부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추천된 것이다. 반상의 신분을 철저히 따지던 시대에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날 것은 뻔했다.

이에 조덕삼 영수는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얻고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금산교회 교인들은 조덕삼 영수에게 큰 박수를 보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이것이야말로 참된 성서적 교회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별이 없고, 그 자체로 함께 어울려 사는 신앙의 공동체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런 조덕삼 영수의 모습은 당시 한국교회에 신선하고 커다란 충격이었다. 기독교 복음이 한국사회의 많은 변화들을 주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교회 내에서는 반상의 문제로 진통을 겪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승동교회에는 무어(S. F. Moore) 선교사의 노력에 의해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많이 출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정 출신의 박성춘 집사가 먼저 장로로 선출되자, 양반 신자들이 이에 반발하고 떠나 안국동에 안동교회(홍문석골교회)를 세웠다.

또 서울 연동교회에도 갖바치들이 함께 모였는데, 갖바치 출신인 고찬익 집사가 먼저 장로로 선출되자 그 교회의 양반 신자들이 이탈하여 종묘 근방에 묘동교회를 설립한 역사가 있었다. 이들은 기독교가 ‘우리 모두의 종교’가 아니라 ‘양반의 종교’로 전락되는 것을 내한 선교사들이 막으려고 하던 과정에서 발생한 사례들이었다. 즉, 초기 한국교회는 기독교가 어느 특권층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길 잃고 죽어가는 죄인들과 함께하는 교회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과 비교할 때, 금산교회 교인들도 훌륭했고 조덕삼 영수는 더 훌륭했다. 이후 조덕삼은 자신의 약속대로 믿음 안에서 이자익을 장로로 섬겼다. 당시는 교역자들이 부족할 때라서 이자익 장로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에도 조덕삼 영수는 앞자리에 앉아 겸손하게 예배하며 이자익 장로의 설교에 집중하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로, 교회에 가서는 반대로 장로와 영수의 관계가 되어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직분을 다하였던 것이다.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은 특히 조덕삼 장로의 모습에 모두 놀랐다. 소작농이나 머슴은 비천한 사람이었다. 그들을 멸시한다고 내놓고 뭐하고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덕삼 영수는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 맛보았기에 성서의 가르침에 순종하였다.

교회의 지도자는 사회적 신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던 것이다. 비록 양민과 천민의 구별이 철저했던 때였지만 교회에는 그런 구별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초기 한국교회의 특별한 모습이었고, 그러했기에 시대의 선각자들은 ‘교회만이 우리민족의 유일한 희망’임을 크게 노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장로가 평양 장로교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했으며, 1915년에는 금산교회 2대 담임목사로 청빙하기까지 했다. 이후 이자익 목사는 장로회 총회장을 3번이나 역임하는 큰 인물이 되었다. 비천한 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름답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참된 믿음의 후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생명의 향기가 있는 아름다운 믿음은 위대한 믿음의 가문을 이루기 마련이다. 조덕삼도 이후 장로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 조영호도 장로가 되었다. 그리고 손자 조세형(전, 국회의원)도 금산교회의 장로가 되어 천국의 유산을 아름답게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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