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8·15 해방, 하늘이 내려준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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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 [59]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올해로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벗어나 독립된지 61주년이 된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거대한 분수령이다. 그날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비로소 자주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민족분단의 아픔을 비롯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오늘의 한국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따라서 8·15 해방은 현대 한국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우리나라는 일제가 국제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35년간의 학정(虐政)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영·중 3국은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결의했다. 카이로 선언(1943)은 한국의 독립이 최초로 명문화된 회담이었고, 이는 포츠담 선언(1945)에서도 재확인되었다. 이는 한국의 해방이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제연합군의 승리로 인한 것임을 알려준다. 그 결과 한국의 장래는 전후 세계정세에 따라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서 이미 한국 현대사의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선각자들이 보기에 해방이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백범 김구는 해방의 날에 “이 소식(왜정의 항복)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 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타력에 의한 해방이 갖는 한계를 미리 내다보았던 것이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는 백범이 예견한 것처럼 전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강대국의 이해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방은 우리민족에게 감격과 환희의 날이었다. 적어도 그날만은 우리민족이 모두 하나였다. 모든 복수심마저 삼켜버린 그날의 기쁨은 그렇게도 깊었고 순수했다. 일제에 저항하다 투옥되었던 수천 명의 애국지사들이 민중들의 환호 속에 풀려났고, 거리는 온통 그동안의 압박과 설움을 털어내고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려는 인파들로 넘쳐 났다. 그리고 목이 터지라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태극기의 물결은 한마디로 우리민족 모두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장관이었다.

특히, 해방은 기독교인들에게 남다른 감회를 가져다 주었다. 한국교회는 일제에 의해 가장 혹독한 억압을 당했던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하에서는 예배도, 성경해석도, 설교도, 찬송도, 헌금도, 교회설립도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해방으로 한국교회는 그 모든 종교적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즉 해방은 민족의 독립 및 정치적 자유만이 아니라 종교적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해방을 흔히 이스라엘의 출애굽사건이나 유대인의 부림절에 견주기도 한다. 해방은 한국교회의 신앙을 근원부터 제거하려던 일제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되찾고 동시에 오욕으로 점철되었던 교회를 새롭게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연합군의 승리로 찾아온 해방이었지만, 그 해방은 하나님이 우리민족에게 주신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해방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해방은 거의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긴 터널을 고통스럽게 통과하고 있을 그 때 해방이 찾아왔던 것이다. 당시 일제는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감행할 정도로 강대한 나라였다. 일제는 그것이 결코 무모한 도전이나 헛된 망상이 아니라 승산있는 싸움이라고 확신했다. 이는 소련의 연합군 참전을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미국 백악관이나, 연합군 참전 여부를 놓고 장기간 고심했던 소련의 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박형룡은 “우리는 36년간 일제의 압박 밑에서 신음할 때에 사람의 힘으로는 구원해 낼 희망이 전혀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따라서 해방은 “하늘이 내려 준 은총”이었다. 그것은 “와야 할 줄 알면서도 오히려 꿈도 못 꾸던 날”이었으며, “도둑 같이 뜻밖에” 다가온 날이었고, “준비 없는 의외의 자유”였다. 황은균 목사는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한다: “오늘을 기다린 지는 오래지만 막상 듣고 나니 거짓말만 같았다. 때는 왔구나, 이제부터다. 가슴은 설레고 어쩔 줄을 몰랐다. 밤을 뜬 눈으로 흥분 속에 세웠다. 18일 날 백리길 평양을 달려갔다. 평양 성중은 환희의 도가니 속에서 뒤끓고 있었다.”

이처럼 해방은 기다리기는 했지만 거짓말처럼 다가왔기에 “하나님의 연민(憐憫)으로 말미암은 은혜”이자 섭리의 선물이었다. 즉 해방은 한국교회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개입이었으며, 구속의 은총이었다. 실제로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역사적 정통성을 잇는 한국교회는 멸절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자, 일제는 1945년 8월 18일을 기해 한국 기독교인 2만여명에 대한 대학살(大虐殺) 계획을 세웠다. 그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신사참배거부를 비롯해 일제의 시책에 끝까지 저항하던 한국교회의 마지막 등불과 같은 신앙인들이었다.

그런데 대학살을 3일 앞두고 민족의 해방이 찾아온 것이다. 며칠만 늦었어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던 신앙의 그루터기들이 송두리째 뽑힐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순교자의 “그 수가 차기까지”(계 6:11) 기다리셨던 하나님께서 “흰옷을 더럽히지 않은” 그분의 순결한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개입하신 것이다. 그래서 블레어는 “하나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엄청나게 축복하셨던 한국교회를 파괴시키려는 움직임을 가만두지 않으셨던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곧, 일본의 패망은 한국교회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개입이었으며, 어둠의 지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던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심판으로 현시(顯示)하셨음을 교훈한다. 따라서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숭배했던 일제의 패망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사실 해방은 세계를 뒤덮었던 흑암의 막이 찢어진 사건으로, 모든 배신문명(背神文明)에 대해 친히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심판의 현시였다. 이에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기보다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 충실하기 위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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