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이수정과 선교사 유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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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 [61]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이수정은 “한국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리고 그는 1886년 5월 당국의 귀환명령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반역죄의 죄목으로 처형되면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로써 그는 50세도 채우지 못하고 지상의 생명을 마감했지만, ‘한국기독교 역사상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어 신앙의 순례자들을 비춰주고 있다.

이수정은 세례를 받은 지 일주일 만인 1883년 5월 8일부터 일주일간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일본 기독교신도 대친목 대회’에서 조선을 대표하여 기도했다. 한국어로 드려진 기도였지만, 이수정의 기도는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감흥을 일으켰다. 그때 거기에 참석했던 무교회주의자인 우찌무라 간죠(內村鑑三)는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그때의 감명을 이렇게 적고 있다.

“참석자 중에 조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은둔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일주일 전에 세례를 받고 자기나라의 의복을 항상 착용하는 기품이 당당한 명문가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말로 기도했는데 우리는 그 마지막에 ‘아멘’하는 소리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무한한 힘을 가진 기도였다.… 우리들의 머리 위에 무엇인가 기적적이요 놀랄만한 사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온 회중이 느끼면서 다같이 감동되고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수정은 대회 중에 그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요한복음 14-15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신인감응(神人感應)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했던 것이다. 즉 믿음이란 인간의 신앙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감응으로 보고, 그러한 현상을 등(燈)과 심지, 종과 망치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치(理致)의 통달을 강조하는 불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수정의 신앙고백문은 한국 기독교인 최초의 것으로 한문 575자로 되어 있으며, 일본의 기독교계 잡지인 <육합잡지> 제34호(1883. 5)와 <칠일잡지> 제8권 22호(1883. 6.1)에 수록되어 있다.

그가 신앙고백문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감응에 대한 한 비유는 다음과 같다. “등잔의 심지(燈炷)가 타지 않으면 빛이 없을 것입니다. 이 등잔의 심지는 곧 도를 향하는 마음이요 불붙는다는 것은 믿는 마음을 말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감응을 말하는 것으로 믿는 마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감응을 받을 수 없으며, 심지는 등이 없으면 있을 수 없으므로, 등이 없을 때는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며,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이덕주, 조이제, 22-23).

한편, 기독교로 개종한 이수정은 재일선교사 및 일본기독교 지도자들과 폭넓은 교제를 가졌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성경번역 및 내한선교사 유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여기에는 선교사 조지 낙스(George W. Knox)와 루미스(H. Loomis)의 도움이 컸다. 물론 당시 일본교회 내에는 한국선교론이 대두되어 한국선교사를 자원하는 자까지 나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수정은 일본교회에 의한 한국선교를 강력히 반대하고 미국 선교사 유치운동을 전개했다. 조선에는 반일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구문명을 일본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미국으로부터 수용해야 한다는 문화적 욕구도 곁들여 있던 것 같다.

사실 제임스 그레이슨(James H. Grayson)이 언급처럼, 개화기에 적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특히 개신교는 발전된 산업 국가들의 종교와 동일시되었다”(Grayson, 127). 그러한 맥락에서 독실한 불교도였던 김옥균도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이 기독교와 서구의 문물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이러한 생각은 한국이 문호를 열고 개신교가 한국에서 놀랍게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수정의 미국선교사 유치운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정은 앞서 언급한 재일 미국선교사들의 도움으로 1883년 7월 미국의 선교잡지,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처음으로 조선을 소개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그해 12월에 2차로 동일한 선교잡지에 선교사 유치운동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이수정은 여기서 먼저 ‘기독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지구의 어두운 구석’에서 이교도의 삶을 살고 있는 조선민족의 참담한 현실과 그로 인한 복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어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으로 개종 후 조선의 복음화를 준비하며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으며, 몇몇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조선에 미국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위해 밤낮 기도하고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계속해 가톨릭의 조선선교와 그 수난 등을 언급한 후, “지금이 조선에 복음을 소개하는데 가장 황금의 기회”라고 적고 있다.

또한 그는 정부도 대외 통상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허용치는 않을지라도 기독교인을 찾아내어 박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후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있다. “여러분의 나라는 기독교국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지 않으면, 나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선교사들을 급히 파송하리라 생각하며, 또한 그러한 가르침들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까 하여 걱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이 파송하는 선교사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MRW, (1884. 3): 145-46].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글은 미국교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실행위원이던 맥윌리암스(D. W. McWilliams)가 이 글을 읽고 선교헌금 5,000불을 내놓으면서 조선 선교사 파송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도 거기서 감동을 받아 한국선교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수정이야말로 가장 처음으로 한국에 선교사를 유치한 최대의 공로자’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하는 헌신이 어떤 결실을 거두게 되는가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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