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애양원의 기초를 놓았던 윌리 포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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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64]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한국교회는 교회사적으로 그리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와 문화 속에 놀라울 정도의 기독교 정신을 새겨놓았다. 작금의 몇몇 한국인들이 아무리 애써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사회와 문화 속에 깃들여 있는 기독교의 정신까지 걷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 복음의 영향력은 근대 이후 한국의 역사를 새롭게 재편했다고 할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민족과 사회 속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참된 기독교 정신을 심어주고자 했던 내한 선교사들의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일례로 애양원의 기초를 놓았던 포사이드(Wylie H. Forsythe, 1873-1918)의 사역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환자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던 선교부는 남장로교 선교부였다. 남장로교는 1909년 전라도 지역에서는 최초로 순천 나병원을 설립하여 나환자들의 치료와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1904년 9월 내한선교사로 입국하여 전주예수병원 2대 원장을 역임한 포사이드의 공로가 크다고 하겠다.

전주에 도착한 포사이드는 어학공부를 하면서 매일 진료소에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이 다 치유로 보상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님을 위하여 겸손히 드리는 사랑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라는 믿음 속에서 사역의 손길을 쉬지 않았다.

하지만 내한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그가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한 폭행을 당했다. 그 사건은 포사이드가 강도에게 심한 상처를 입은 이 씨라는 양반을 치료하기 위해 만골이라는 마을로 왕진을 갔다가 당한 것이었다. 만골이라는 마을은 전주에서 2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치료를 마친 포사이드는 밤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그 환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하고 몇 명의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4시 경에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무장을 한 일곱 명의 복면강도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포사이드를 죽이려고 총을 겨누었고, 이에 포사이드가 총을 뺏으려고 저항하자 사정없이 그를 도끼 같은 둔기로 내려쳤다. 함께 잠을 자던 한국인들이 포사이드를 보호해 보려고 애썼지만 헛수고였고, 그들도 심한 구타를 당하고 말았다. 도끼에 맞은 포사이드는 의식을 잃었고 피를 많이 흘려서 극도로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동료 의료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포사이드는 어느 정도 상처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건강이 너무 나빠져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포사이드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한국을 잊을 수가 없었다. 포사이드는 자신이 그러한 어려움을 당한 것은 우리 민족이 악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다고 확신했다. 우리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포사이드는 1908년 가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목포진료소에서 그의 사역을 재개했다. 얼마 후 포사이드는 한국인들 사이에 “우리 가운데 다시 온 예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을 향한 그의 헌신적인 사랑이 그만큼 지극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삶은 병든 사람들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찼으며,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중 포사이드는 광주에서 사역하던 윌슨(R. M. Wilson) 선교사로부터 오웬(Clement C. Owen) 선교사가 폐렴에 걸려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에 포사이드는 말을 타고 33마일 떨어진 광주로 왕진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광주까지 13마일 정도 남아 있는 지점에 왔을 때 포사이드는 나병으로 길가에 쓰러져 거의 죽게 된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포사이드에게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이에 포사이드는 그 여인을 일으켜 자신의 말에 태우고 광주로 달려갔다.

포사이드가 광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오웬 선교사는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간 후였다. 포사이드는 그 여인을 진료소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다른 환자들이 그 여인의 흉측한 모습을 보고 소리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 바람에 포사이드는 어쩔 수 없이 그 여인을 진료소를 건축할 때 사용했던 벽돌 가마로 임시 옮겨놓았다.

현장을 목도한 오웬의 아내는 이렇게 증언한다: “아주 신사처럼 말끔히 옷을 입은 포사이드는 병으로 냄새나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불결하기 짝이 없는 이 여인의 팔을 가끔 잡기도 했다. 이 여자의 머리카락은 아마 몇 달 몇 년간 빗지 않은 것 같았고 옷은 누덕누덕하여 아주 더러웠으며, 발과 손은 부어올라 있었고 온통 상처로 덮여 있어서 뒤범벅된 역겨운 냄새를 뿜어내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동포들조차도 외면했던 그 여인을 포사이드가 거두고 돌보았던 것이다.

포사이드는 그 여인을 벽돌 가마로 옮긴 후 윌슨의 도움을 얻어 그녀에게 잠자리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은신처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짓무르고 곪아터진 상처들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2주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놀라운 것이었다. 포사이드의 희생적인 섬김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지게 되었고, 그처럼 “내국인과 외국인의 마음에 그렇게 깊은 감명을 준 사람은 없었다.”

이를 계기로 1911년 나환자를 위한 정착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이어 1912년에는 광주 나병원이 설립되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수많은 나환자들에게 재활의 기회가 제공되었다. 그리고 1925년에는 거의 600명의 나환자들의 정착촌이 형성되었다. 그러자 광주 시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게 되었고, 이에 나환자공동체는 1926년 정부가 기증해 준 여수/순천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애양원, 곧“사랑으로 보살피는 동산”이라고 태어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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