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섭 칼럼] 주님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메켄지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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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섭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한국교회의 역사[70]

				▲허명섭 박사(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허명섭 박사(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1884년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교파적 배경을 가진 교파형 선교사들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한 교파적 배경 없이 개개인이나 단체의 후원을 받고 들어온 독립형 선교사들이다. 후자는 선교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오직 하나님께만 의탁한다는 점에서 흔히 신앙선교(Faith Mission)의 사람들로도 불린다. 그런데도 그동안 한국교회사에서는 주로 교파형 선교사들에게 조명이 맞추어져왔다. 때문에 독립형 선교사들은 묻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독립형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순수 복음운동, 직접전도의 정신, 토착화의 시도 등이 그것이다. 독립형 선교사들은 교파형 선교사들에 비해 운신의 폭이 보다 자유로웠기 때문에 실험정신을 갖고 사역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각 교파의 이식보다는 구령 중심의 토착화사역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교회 “토착화의 거보”를 놓았던 윌리엄 매켄지(William J. McKenzie, 1861-1895) 선교사이다. 그는 캐나다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온 사람으로 한국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영적 부담감을 느끼고 혈혈단신으로 내한했던 독립선교사였다.

매켄지가 내한한 것은 1893년 12월이다. 그는 일찍이 캐나다 동북의 라브라도(Labrador)에서 개척 선교의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할리팍스의 한 교회에서 인정받는 목회자로 사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선교사들의 글을 통해 선교지 한국에 대해 접하게 되면서 영적인 부담을 갖게 되었다. 이에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이에 그는 먼저 자신의 돈 100달러를 한국을 위한 선교비로 보내고, 자신의 뜻과 희망을 캐나다장로교선교부에 알렸다. 하지만 캐나다장로교선교부는 당시 해외선교로 인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선교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해 왔다.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기도 중에 “한국으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들었고,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만약 캐나다장로교선교부가 재정적으로 그를 후원해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여러 후원자들이 그의 한국선교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그는 “조선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서 그들과 같이 살다가 마지막 나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들과 같이 일하리라”는 결의를 새기며 한국에 들어왔다.

서울 도착 후 그는 선교사들과 교제하며 선교지를 탐방하고, 한국어를 배우다가 황해도 장연의 소래(松川)를 자신의 사역지로 정하고 그곳으로 갔다. 한국인들과 섞여 살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소래에 도착한 것은 1894년 2월 3일 금요일이었다. 그가 소래에서 처음으로 전했던 말씀은 마태복음 13장의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 비유였다. 이 말씀을 통해 그는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과 준비된 자의 축복에 대해 설교했다. 그는 어떠한 것보다 먼저 순수한 복음을 한국인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소래에 거주하면서 한국식 옷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인들과 함께 뒹굴고 호흡했다. 그의 이러한 생활방식을 보면서 소래 주민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이것은 그가 소래 주민들과 비교적 쉽게 교제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복음을 보다 쉽게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소래에는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그 영향력은 동학군들에게까지 퍼져나갔다.

당시 소래마을은 그 지역에서 동학군의 침략을 받지 아니한 유일한 곳이었다. 거기에는 매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매켄지도 동학군의 공격을 받아 두 번이나 죽음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헌신적인 사랑을 알게 된 동학군들은 그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동학군의 요새를 찾아가 전투 중에 입은 부상으로 피투성이가 된 동학군 영수와 동학군들을 치료해 주기도 했다. 이후 동학군 지도자들은 소래를 지나갈 일이 있거나 서울의 소식을 알고 싶을 때는 일부러 그를 찾아올 정도였다.

그 결과 소래마을은 주변에서 최고의 안전지대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곳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소래교회의 신자라는 것은 신변안전을 위한 보증수표와 거의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이러한 일도 있었다. 소래교회의 신자 중의 하나가 시장에서 황소 한 마리를 사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동학군의 습격을 받았다. 동학군들은 처음에 황소 주인을 위협하며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황소 주인을 심문하던 중 그가 소래교회의 신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황소를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매켄지와 소래교회가 그 주변지역에 미쳤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와중에 거인 같던 그의 체격도 자신의 돌보지 못하고 쏟아 붓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고갈되기 시작했다. 사실 소래지역의 안전과 소래교회의 부흥은 그의 생명을 담보로 생겨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미처 돌보지 못했던 과로와 그로 인한 불찰로 숨을 거두어야 했다. 그때가 1895년 6월 23일 주일날이었다. 죽기 직전 그는 소래교회 신자들에게 자신의 의복과 남은 돈 172달러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의 시신은 교회 부근에 묻어줄 것을 부탁했다. 마지막 남은 모든 것까지 한국인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이다.

매켄지는 한국에서 1년 반을 넘겨 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동료들의 가슴 속에 그 푸른빛이 지속되도록 인상을 남겨 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캐나다장로교도 1898년 9월 3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내한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감동적인 죽음이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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