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근 칼럼] 희망을 산 선지자,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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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근 목사(이수중앙교회, 기장 증경총회장)
▲박원근 목사(이수중앙교회, 기장 증경총회장)

때는 주전 587년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이미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겹겹이 포위되어 있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심판을 예언하다가 시드기야 왕에게 체포되어 시위대 감옥에 감금되었다. 바로 그 때다. 그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 와서 “내 밭을 사라”는 것이다. 당시에 전답은 아무에게나 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팔 수 있는 사람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지금이 어느 땐가? 나라를 잃게 될 것은 확실한 일인데, 나라를 빼앗기면 모두가 종으로 끌려갈 것인데, 전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예레미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이 밭을 샀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

지금 백성들의 시선은 한 사람,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집중되어 있다. 선지자가 국란을 핑계로 자신의 의무를 저버릴 것인가? 그러면 세상은 끝나버린다. 백성들은 절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밭을 샀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크게 흔들리던 백성들의 마음은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다. “백성들은 ‘나라가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인가 보다, 설령 망한다 하더라도 곧 회복되겠구나’하고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그날을 위해서 밭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절망에 우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희망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야 한다.

예레미야가 이 절망의 때에 밭을 산 것은 자기 자신보다 나라와 민족 공동체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어려워지면, 절망의 때가 찾아오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게 된다. 서로 자기가 먼저 살겠다고 아우성들이다. 자기 몸만 도사리게 되고, 나 하나 죽게 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서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 그것이 기업이든, 일터든, 국가든 다 내팽개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서로가 자기만 살겠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인가? 몸이 살아야 발도 살고, 손도 사는 것이지 몸이 죽는데 어떻게 손이 살고, 발이 살 수 있겠는가?

예레미야가 사촌의 밭을 산 것은 혼자서 살자는 것이 아니었다. 개인으로는 희생이다. 당장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생각해서 산 것이다. 지금 나라가 무너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다고 해서 무너질 나라가 무너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보이는 나라는 무너진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신앙까지 무너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 살아 있다면, 나라가 망해도 다시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신앙까지 죽어버리면, 그 때는 민족이고 나라고 다 끝나버린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신앙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네 처지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곤경에 처한 형제의 요구를 물리쳐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예레미야는 사촌의 밭을 샀다. 이러한 선지자의 신앙이 결국 광풍으로 꺼져가는 백성들의 마음에 신앙의 불을 지펴 주었고, 그 신앙의 힘이 결국에는 무너진 나라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예레미야가 절망의 때 밭을 산 것은 절망을 넘어 동터올 새날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인이나 민족, 국가에도 절망의 때는 있다. 그러나 절망이 온다 해서, 그 절망이 마지막은 아니다. 다만 마지막처럼 보일 뿐이다. 절망의 때는 지나고, 반드시 희망의 새날이 밝아 온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희망의 날이 약속되어 있다. 신앙인들은 그날을 보장받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절망의 날에도 밭을 살 수가 있고, 전쟁의 소식을 듣고도 사과나무를 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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