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방 가능성에 “하나님만 안다” 답변… ‘감상적’ 우려도
첨단 IT기자재 도입과 교수 영입 문제로, 예정된 개교 일정에 차질이 생겼던 평양과학기술대학교가 특별한 변동사항이 없는 한 내년 4월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남북 협력 강화’가 협의된 데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평양과기대 설립 단계부터 제기된 모금의 투명성 문제와 뚜렷한 목적 없는 감상주의적 추진에 대한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초대 총장으로 임명된 김진경 연변과기대 총장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직접 IT단지 및 입주 허가에 대한 위임증을 받았다”며 “개성공단과 같이 대학 부내 수백만 평에 R&D 센터와 지식산업 복합단지 등을 건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과기대는 김 총장을 비롯한 남북한 관계자들이 내년 4월 개교를 목표로 건립 추진 중으로, 국내 이공계 교수진 10여 명이 평양에 머물면서 강의하는 과학기술 분야 특화대학이다.
계획대로라면 평양시 락랑구역 승리동 인근에 위치한 평양과기대는 올 연말까지 건축공사를 마무리한 후 내년 초 교육기자재 설치 및 학사시스템 임시 가동을 거쳐 4월 개교할 예정이다.
김 총장은 “평양과기대를 북한의 IT분야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 부지에 수천만㎡의 IT산업단지를 함께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창 공사 중인 평양과기대는 ‘디지털 캠퍼스’로 만들어질 계획이다. 이러한 디지털화에 따라 억제돼 있는 북한 내 정보화가 자연스럽게 개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설립위원회 측은 “과기대 캠퍼스 내 모든 건물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며 IT BT를 중심으로 한 첨단 교육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김일성 종합대학의 경우도 아직 전자도서관 등 일부분에서만 디지털 캠퍼스화가 진행되고 있을 뿐 캠퍼스 전체가 인터넷 망으로 연결돼 있지는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디지털 캠퍼스화에 필요한 컴퓨터 등 첨단 연구기자재들 상당 부분이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어 북한 반입이 미국 정부의 승인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학교에 들어가는 첨단 장비는 평양과기대의 법적 소유권과 경영권자인 민간단체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 목사)과 김 총장을 비롯, 설립위 공동위원장인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맬컴 길리스 미국 라이스대 전 총장이 미국 국무성, 상무성, 국방성에 기자재 반입 신청을 내고 허가를 받아야 들여올 수 있다.
이에 박찬모 위원장은 “첨단기자재 도입을 위해 미국의 수출관리규정(EAR) 해제 승인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밝히고 “하지만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 개교를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과기대의 첫 학기에는 북측의 우수 인재들로 선발된 150여 명의 학생이 입학, 대학원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교수진은 남측을 비롯한 다국적 교수가 평양에 상주하며 북측 인재를 양성한다. 2008년부터는 학부 학생을 모집할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교수 240여 명과 학생 2천여 명 규모의 종합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추후 과기대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의 과학기술 협력 방안 등을 통한 남측 유학 등 긴밀한 교류 가능성에 대해 김 총장은 “하나님만 아실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한편, 김 총장은 일부 언론에서 이번 정상회담 당시 방북한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평양과기대 건립 등 과학기술 협력’이었다는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구체적 언급이나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17일 평양과기대측의 요청으로 평양시 인근 ‘낙랑공단’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위해 한국산업단지공단 김칠두 이사장이 평양을 방문한다는 일각의 소식 역시 ‘전혀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고 김 총장은 밝혔다.
‘투명성 부족’‘감상적 사고’ 우려의 목소리도 커
하지만 내년 평양과기대 설립에 대해 북한의 정보화 개방,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로 인한 남북한 경제 협력 등의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지극히 감상적 사고’라는 비판적인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2002년 평양과기대 설립 계획 발표 이후 설립을 주도했던 인사들과 관계자들은 평양과기대 건립을 ‘민족’, ‘화해’, ‘협력’ 등의 단어들을 사용해가며 ‘통일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주장만 펼쳐 왔을 뿐 일각에서 우려하는 부정적 측면은 애써 배제해 왔다.
실제로 평양과기대 건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북녘 학생들이 우리의 스승이 될 것”, “북한 공산당을 긍휼이 여겨야 한다”는 등 도를 넘어선 발언들을 해 왔다.
지난 2월 사랑의교회 수요예배에서 김 총장은 줄곧 북한에 대한 미움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며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해냈다. 북한 정부도 우리의 사랑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5년 평양과기대 설립자대회에 참석한 한 청년은 “남과 북 어느 쪽이 성경이 말하는 남은 자인지 모르겠다. 북한이 남한에 의해 선교 당한다고 말하면 우스운 일이다”는 식의 발언들을 쏟아냈고 당시 참석했던 주요 인사들은 오히려 “학생의 말에 크게 감동했다”고 응답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같은 일들이 일어나자 평양과기대 설립 의도에 대해 ‘감상주의적’이라며 지원을 거부한 사례들도 있다. 김 총장이 평양과기대 모금을 위해 교회에서 강연을 해도 지원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던 목회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평양과기대 설립을 반대하는 목회자들은 “감상주의에 발판을 둔 대학 설립은 결국 북한에 빼앗길 가능성만 큰 도박에 불과하다”라는 입장이다.
특히 평양과기대가 국내 모금과정에서의 모금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어 교계 지도자들의 우려를 계속 사고 있다. 평양과기대 설립을 위한 모금은 대학생을 대상으로까지 진행됐으나 모금액이 공지된 바는 지금까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