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그 새로운 조명 12] 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
한국교회의 부흥을 꿈꾸는 크리스천들이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필요한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단 한 마디로 말하건대, 그것은 바로 ‘순교적 영성(Martyrdom Spirituality)’이다. 오늘날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μάρτυς), 즉 순교적인 자세로 삶을 사는 이들이 별로 많지 않음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현대 한국교회의 저하된 도덕성과 세상 앞에 영향력을 잃은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을 여러 차원에서 그 해법을 궁구할 수는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치유책은 잃어가고 있는 순교적 신앙의 전통을 다시금 교회와 삶 속에 확립하는 길이라고 본다.
그러면 ‘순교적 영성’이란 무엇인가? 먼저 ‘순교’란 특히 협의적 의미에서, ‘죽음을 택함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죽음에는 명백한 의도성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 목적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영성’이란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종류의 영성들을 나열할 수 있고 또 영성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필자가 보는 시각에 의하면 영성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반응하는 인간 영혼의 태도’이다. 그러므로 ‘순교적 영성’이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죽기까지 투철한 각오로 매사에 하나님을 섬기는 영혼의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지니고 생명을 다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삶 속에서 발휘되는 순교적 영성의 실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순교적 영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기독교 신학의 중심에 위치한다.
1) 순교적 영성은 십자가 신학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함을 통해 순교적 영성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역시 복음의 증인(μάρτυς)으로서의 삶을 살 것을 부탁하셨다(눅 24:48, 행 1:8, 26:16).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포함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비장하게 복음을 증거했다.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 시대가 찾아오자,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고, 고귀한 순교의 피로 얼룩진 초대교회의 역사는 실로 교회사의 황금시대였다.
루터(Martin Luther)는 중세교회의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에 반기를 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두는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을 강조했다. 루터는 이러한 십자가 정신의 강조를 통해 허영과 위선과 교만에 부풀어 있던 중세교회를 예리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몰트만(Jürigen Moltmann)은 참된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 집중하게 될 때 크리스천의 경건은 어떠한 고난과 허영과 유혹과 죽음까지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만일 모든 크리스천들의 영적 현주소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십자가 자의식’에 근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순교적 영성의 참된 발로이며, 이런 점에서 볼 때 순교적 영성은 십자가 신학의 자연스런 귀결인 것이다.
2) 순교적 영성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핵심이다.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값싼 은혜(costless grace)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으로서,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라고 보았고, 값진 은혜(costly grace)는 제자로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나서는 신앙을 말한다고 보았다.
그러면 제자로의 초청은 몇몇 선별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막 1:17)’고 말씀하시고, 또 그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으라고 하셨다(마 16:24, 막 8:34, 눅 9:23).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마 28:19)’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누가 제자인가? 모든 참으로 거듭난 신자들은 본질상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제자로서의 정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제자도(discipleship)의 덕목은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로 사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죽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좇아 좁고 협착한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러한 참된 제자도 정신 속에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자 하는 순교적 영성이 피어난다.
3) 순교적 영성은 복음적 성령론의 핵심이다.
개신교 성령론의 전통적 양대 조류라고 할 수 있는 개혁주의 성령론이나 웨슬리안 성령론의 핵심은 명백하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십자가의 능력이 가져다 주는 거룩함의 능력에 있다. 개혁주의 성령론에 있어서의 성화(聖化)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성화의 적극적인 면은 활기를 주는 것, 즉 새 사람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키는 것이며, 소극적인 면은 억제하는 것, 즉 옛 사람을 약화시키고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점차적으로 우리의 평생에 걸쳐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웨슬리안 성결론에서 말하는 ‘죄성제거설(Eradication)’도 역시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으로 이루어진 영적 사실(spiritual truth)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신자 안에 거하는 죄는 원칙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 자기 옛사람이 죽은 십자가에 눈을 떼지 않고 승리를 고백하는 동안 그의 심령 가운데서 죄를 향한 유혹은 실제적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복음적 성령론을 이끌고 가는 동인(動因)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영적 사실을 깊이 신뢰하면서, 이에 반하여 작용하는 어떠한 유혹도 의지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진지한 믿음과 결단에 있다. 이러한 정신의 근원은 일찌기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에 분명하게 그 원리가 제시돼 있다(롬 6:6, 갈 2:20, 5:24, 6:14). 그러나 이러한 영성의 현현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히 12:4)’ 하리라는 정신을 통해 예수와 함께 죽은 십자가 죽음의 영적 사실을 끊임없이 고백하는 순교적 영성을 통해 샘솟아나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위한 진정한 부흥의 길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순교적 영성의 보편적 실행에 있다. 현재 온라인(on-line)과 오프라인(off-line)을 통해, 순교적 영성이 새 시대를 이끌고 갈 영성이라는 공감대가 조성되고 있다는 보고는 매우 고무적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순교적 영성이 복음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요소라는 점을 신학적, 목회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강조해야만 할 때다. 그럴 때 한국교회는 단호한 십자가의 정신을 짊어지고 다시 힘 있게 일어서게 될 것이다. 순교적 영성으로 무장된 다음 세대들을 일으키는 일, 이는 우리가 염원하는 한국교회의 부흥과 세계선교의 완수를 위해서 우리가 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비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