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씨가 자신의 태도를 급변경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무섭다느니, 검찰의 조사에 승복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나라 전체를 어수선하게 하더니 갑자가 순한 양처럼 자세를 낮추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혼란을 일으켜 국민께 죄송하다”는 내용,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공개한 시점은 대선 하루 전날,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하나는 언짢은 마음입니다. 국민들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자는 행동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한 사람의 장난감 신세였구나 하는 자괴감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또 하나는 안 됐다는 마음입니다. 중형이 예상되는 시점, 보석 허가도 받기 어려울 수 있는 시점에서 저렇게라도 몸을 낮추어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모습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튼 김경준씨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먼저 신당쪽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BBK를 가지고 이명박 후보를 압박하느라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이제 공격할 구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BBK 건 말고 다른 것들도 함께 따지고 들었어야 했다며 후회를 해도 이미 기차는 떠난 다음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면죄부만 쥐어주고 말았으니 그 얼마나 피해가 큽니다. 적을 무찌를 부메랑에 자신들이 맞은 꼴입니다.
다음으로 국민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BBK로 인해 온 국민들은 대선후보자들의 정견에 집중할 여유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BBK 소식에 정신이 팔려 다른 후보자들의 공약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한나라당과 신당의 싸움에 또 눈이 가는 바람에 후보자들의 정책을 심도 있게 살펴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국민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100%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경준씨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이번 김경준씨 해프닝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이회창 후보입니다. 처음 BBK 사건이 터져 나올 때 이명박 후보로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그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 이회창 후보였습니다. 이미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이회창 후보로서는 이번에 나오지 못할 경우 다음에 나오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마침 터져 나온 김경준 해프님을 보면서 내심 기대의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특별히 이회창 후보가 후보자로 거의 확실시되기 직전 20%가 넘는 지지율이 있었고 BBK 사건이 제대로 터질 경우 이명박 후보가 사퇴를 하거나 지지기반을 잃게 되면 그 반등으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것이 유력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BBK 사건만 아니었어도 이회창 후보가 전면에 등장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BBK 여파가 무한정 커지면서 이명박 후보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BBK 사건이 이명박 후보에게 타격을 입히기는커녕 다른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마저 앗아가 버렸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요지부동이라는 것도 이회창 후보로서는 난감할 노릇일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회창 후보를 배신자 취급하면서 실망감을 표시하는 일들도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니 이회창 후보로서는 사면초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회창 후보는 김경준씨 때문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탄생합니다. 역사상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경준씨의 이름도 나란히 있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김경준씨의 모습은 분명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김경준씨로 인해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이회창 후보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높아지는 밤입니다. 이회창 호부는 이 밤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르겠고요.
예수비전교회 안희환 목사
[안희환 칼럼]BBK 피해자는 이회창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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