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씻고+놀고)×(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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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우 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 (2)

어느 사회든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전통과 뿌리 깊은 문화가 있다. 대체적으로 중국 하면 “음식 문화”, 일본 하면“목욕 문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유럽은 “여가(놀이) 문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음식문화로 상징되는 중국

대만, 홍콩을 포함한 중국문화권에서 호텔을 반점(飯店)이라 부른다. 규모가 크면 앞에다 대(大)자를 붙여 대반점이라고 한다. “밥 반(飯)”과 “가게 점(店)”을 합하면 음식점이란 뜻이 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호텔은 음식을 먹고 자는 곳이란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 이것이 중국 하면 “음식 문화” 즉 “먹는 문화”란 개념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본국을 떠나 타국에 이주하여 생활을 삼는 기본적인 수단이 대개 음식점을 기반으로 둥지를 튼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음식점을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마드리드 역시 식당이나 식품점을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지 이미 오래다.

스페인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동양인만 보면 중국 사람으로 취급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자기들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동양인을 구분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옷을 좀 남루하게 입으면 중국 사람으로, 좀 반듯하게 차려 입으면 일본 사람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간혹 잠바 차림으로 채소나 과일을 사러 갈 때면 이곳 사람들이 나에게도 뜬금없이 “식당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을 하곤 한다. 그냥 쳐다만 보았는데도 식당주인처럼 단정하고 이내 식당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 순간을 변명하지 못한 탓 때문에 여태껏 내가 식당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 일본 사람이냐고 물어 볼 때도 있지만, 그 경우는 정장을 하고 괜찮은 심방 가방을 들고 다닐 때만 그렇다.

목욕 문화로 상징되는 일본

“일본은 원숭이도 온천을 즐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은 목욕을 즐긴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목욕탕을 찾는다. 일본의 주거환경 가운데 목욕탕은 필수품이다. 내가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는 일본인이 지은 교사(校舍)로, 사택은 물론 학교 안에 욕탕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고에몬부로”(五右衛門風呂)라는 일본식 목욕통에서 꼭 한번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졸업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지만 집 없는 선생님에게 사택을 양보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요즘은 서구식으로 목욕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깊은 욕조에 몸을 푹 담가 목욕을 하는 “고에몬부로” 욕조를 사용할 때는 목욕 순서가 정해져 있다. 가족끼리 사용할 경우에는 연장자,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할머니, 어머니, 딸의 순서이고, 손님이 왔을 경우에는 손님이 가장 먼저 사용한다. 물론 욕조 안에 있는 물은 단 한 번도 비우지 않고 사용하는 데, 욕조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성을 반영한 것인지 일본에서 호텔의 옛 이름을 “숙옥(宿屋)”이라 불렀다. “묵을 숙(宿)”“집 옥(屋)”이 합쳐진 말로, 깨끗이 씻고 잠자는 곳이란 의미이다. 일제시대부터 들어온 목욕 문화가 이미 한국을 강타한 것은 물론 유럽에 상륙한 지도 오래 되었다. 대형 야외, 실내 수영장, 놀이시설, 사우나, 치료를 위한 각종 탕, 그리고 남녀 혼탕까지 구비해 놓고 유럽인들을 손짓하고 있다.

여가(놀이) 문화로 상징되는 유럽

“유럽인이 천국에 가면 그곳엔 프랑스 요리사와 영국 경찰, 독일 엔지니어가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세계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만든 세계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여름 휴가, 여행의 유혹을 막지 못하고 있다. 유럽인들의 주당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적고 여가시간은 가장 많다. 유럽은 대체적으로 여름 바캉스가 한 달이나 한 달 반 정도 되다 보니, 어디론가 가지 않고 못 배긴다. 평상시 구두쇠처럼 지낼지언정 바캉스만큼은 후한 것이 그들이다.

유럽에서 사람 좋고, 음식 좋은 곳 하면 일단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된다. 지중해에 위치한 천해의 휴양지, 마요르카는 인구 50만 명의 작은 섬이지만 호텔만 5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관광객들이 넘친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한국의 2인분 정도로 내올 정도로 풍성하다. 정열의 나라란 이름에 걸맞게 어딜 가나 춤이 있다. 이들 나라는 이상하리 만큼 한민족과 여러 면으로 닮은 점이 많다. 앉았다 하면 먹고 노래하는 것이나, 떠들며 얘기하는 것이나, 학연이나 지연을 따지며 얼굴을 붉히는 것까지 흡사하다.

그러나 오래도록 “노세, 노세”를 구가해 오던 유럽도 몇 해 전부터는 적게 놀고 많이 일해야겠다고 허리를 졸라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 이제는 보편화되었다. 한국이 주 5일 근무를 하자고 야단칠 때, 유럽인들은 외국인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면서 주 6일을 근무해야 하겠다고 집단 농성을 했다. 이 사실도 모르고 한국인들은 뒤늦게 해외여행의 달콤한 맛에 취해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다.

술 문화로 상징되는 한국

한국 역사 가운데 술에 대한 기록이나 일화가 타민족에 비해 많은 편이다.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TV 역사극에서 술과 주점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전통 민요와 대중가요 속에서도 다른 소재에 비해 월등히 두드러지게 많다. 한국은 나그네가 쉬어 가는 곳을 주막(酒幕)이라 했다. “술 주(酒)”자에 “막 막(幕)”을 합하면 술도 마시고 잠도 자는 곳이란 뜻이다. 한국 민요 “긴 아리랑”의 가사를 보면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정든 님 오기만 고대 고대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중가요 “번지 없는 주막집”이라 노랫말에도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에도...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라는 가사에서 보듯이 술을 마시면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오동동 타령” “홍도야 울지 말라”등에 이르기까지 술은 사랑, 이별 그리고 삶의 애환과 분리할 수 없는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이 가장 훌륭한 시인으로 “두보”를 꼽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태백”이라고 말한다. 이는 한국인들의 정서가 대부분 술과 관계되어 있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한 때 기업에서 “술 상무”라는 유령의 직책을 만들어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술 접대를 전담한 사례가 횡행했던 적이 있었다. 한국사회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술이 지배하는 사회인 듯 착각될 때가 있다. 초상집, 잔칫집, 돌잔치, 개업, 입주 후에는 반드시 인사불성이 된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고, 술 주정은 물론 다투기도 예사다. 해외에서도 송년회, 친목회 등 한인들이 모이는 곳이면 역시 술이 단연 주연이다. 폭탄주며, 원샷이니 하면서 술을 강요하는 권주 습관의 잔재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외 여행을 할 경우 호텔에서 짐을 풀고 제일 먼저 가는 곳이 바로 술집이다. 객지에서 맨숭맨숭 그냥 잠을 자지 못하고 한잔하고 난 다음에 호텔로 다시 돌아와 잠을 자야 속이 풀린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해외여행 중 술에 취한 한국인들이 좀도둑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돈과 여권, 소지품까지 몽땅 빼앗겨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여름철이면 절정을 이룬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통해 공들여 쌓아 놓은 한국의 좋은 이미지가 잘못된 술 문화로 한 순간에 깨어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to live+to have=to be”

한국은 중국의“음식 문화”, 일본의“목욕 문화”그리고 유럽의“여가(놀이) 문화”와 한국 특유의 “술 문화”가 겹쳐진 혼합문화라고 생각된다. 즉 술과 합쳐진 음식 문화, 술과 합쳐진 목욕문화, 그리고 술과 합쳐진 여가 문화가 그것이다. 이것을 수학공식처럼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될 것이다. (먹고+씻고+놀고)×(마시고)=“먹고 마시고, 씻고 마시고, 놀고 마시고”라는 답이 나온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은 본능적 욕구(to live)단계에서 재산이나 지위, 권력을 소유하려는 욕구(to have) 단계로 발전하고, 다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의 욕구(to be)로 발전한다”고 했다. 그의 철학도 위와 같이 대입해 보면 다소 억지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즉, “to live+to have=to be”라는 공식이 나온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욕구와 모든 소유의 결론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위한 것이란 답이 나온다. 사람이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더 선결되는 것은 “어떤 존재로 살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똑같은 애벌레가 꽃가루에서 나온 꿀을 먹으면 일벌이 되지만, 로열젤리를 먹고 자라면 여왕벌이 된다. 일벌은 한 달 정도밖에 살지 못하지만,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 여왕벌은 4, 5년을 거뜬히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비롭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로열젤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벌의 존재방식과 전혀 다르다. 벌은 최소한 로열젤리를 일주일만 먹어도 여왕벌이 될 수 있지만, 사람은 1년이나 혹 그 이상 로열젤리를 먹는다고 여왕이 되거나, 더욱 오래 살기는커녕 잘못하면 당뇨병으로 고생할 수 있다. 사람의 가치관은 동물과 달리 무엇을 먹고, 마시고, 쾌락을 누리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 필자 / 김학우[kmadrid@hanmail.net]
-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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