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독수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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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우 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 (3)

				▲김학우 목사.
▲김학우 목사.

한국에 조기유학의 붐이 일면서 신조어가 생겼다.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그리고 “독수리 아빠”가 그것이다. 자녀의 유학을 위해 아내마저 해외로 보내놓고 혼자 고생하는 아버지를 이렇게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기러기 아빠”란 마치 기러기가 1년에 한두 번씩 이동하는 것처럼 가족에게 한두 번 방문한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며, 생활비만 꼬박꼬박 보내고 가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펭귄 아빠”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가장을 “독수리 아빠” 라고 부른단다.

누가 기러기 아빠를 만들었는가?

지금 한국은 영어 열풍을 넘어 “영어 광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영어에 능통하고 외국 물정에 밝은 유학파들이 국내 대학 졸업자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부터 유학의 열풍은 이미 달구어져 왔다. 더구나 새 정부가 영어교육 정책을 내놓으면서 영어바람은 가히 광풍에 가깝다. 실제, 일반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일류 대학 출신자보다는 미국의 2류 대학 출신자를 선호하는 것도 조기유학을 가속화시킨 이유 중 하나다.

기러기 아빠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내에서 과외로 지출되는 사교육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차라리 이 돈 가지고 유학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 아이들이 심각한 “입시지옥” 도 피하고 졸업 후 어느 정도 취업도 보장받을 수 있는 해외 유학을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악의 경우 자녀들이 해외에서 적응을 잘못해 혹시 조기 유학에 실패한다 해도 영어만은 건질 수 있다고 생각되면 영락없이 기러기 아빠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갈수록 유럽에도 조기 유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조기 유학은 단순히 영어교육만이 아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 부모들은 과거와 달리 자녀에게 재산을 더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은 줄었지만, 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만은 더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배운 며느리에게 밥 얻어먹기 힘들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기러기의 속성을 쏙 빼닮은 기르기 아빠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진 산골에 /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 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있나 / 아 - 아 - 우리는 외로운 형제 / 길 잃은 기러기” 60년대 트로트 전성시대를 구가한 “엘레지의 여왕” 이라 불리는 “이미자” 의 “기러기 아빠” 란 노랫말이다. 서민들의 애환을 가슴 절절이 담아낸 “기러기 아빠” 는 “노랫말이 월남에 파병된 아빠가 전사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 빗대서 사회 분위기를 해친다” 며 한때 금지되기도 했다. 월남전 이후 잠잠했던 “기러기 아빠” 가 또 다시금 속출하고 있다. 이토록 급작스럽게 “기러기 아빠” 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은 기러기와 닮은 속성과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높은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을 보면 무조건 앞에 있는 기러기 뒤를 따라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러기의 이동 대열은 언제나 “V” 자 대형이다. 기러기 심리 못지 않게 기러기 부모들의 심리 또한 다르지 않다. 한국부모들이 조기유학을 보내는 이유 중 하나가 “일단 따라하기” 심리가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대로 자식을 내버려 두다가 낙오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과 함께, 내가 잘 아는 친구, 회사동료가 유학을 보내니까 우리 아이도 보내자 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의 행동양식 또한 기러기와 다르지 않다. 기러기는 가족 중 병에 걸렸거나 낙오자가 생기면 반드시 두 마리가 따라붙어 돌본다. 그런 후 본 대형에 합류한다. 그러기에 동양의 군자였던 정자는 “짝지어 살던 기러기의 어느 한쪽이 죽으면 남은 한쪽이 다시 짝짓지 않는다” 고 하여 절개를 상징하는 새라고 했다. 또한 기러기는 평생의 반려자로, 먼 거리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잡아 새끼들을 먹이는 새로 상징되고 있기에 한국의 전통 결혼식에서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조기 유학의 유형을 보면 자녀 혼자 보내는 경우보다 대개 엄마와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새끼를 위해 둘이 떨어져 고통을 감내하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마저도 기러기와 너무나 쏙 빼닮은 데가 있다.

연어 같은 어머니, 펭귄 같은 아버지

한국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말할 때 “하늘 같이 높고 바다 같이 깊다”고 다소 추상적으로 표현하지만, 에스키모 인들은 “연어 같은 어머니, 펭귄 같은 아버지” 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프랑스 한 영화사가 남극에서 펭귄의 삶을 추적하여 “황제 펭귄”이란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펭귄 아빠” 는 부성애의 경지를 넘어 처절함마저 감출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펭귄들은 남극의 겨울 중 어떤 동물도 접근 할 수 없는 “오모크”라 불리는 얼음분지에서 짝짓기를 한 후 알을 낳는다. 영하 40-50도의 추위 속에서 알을 품고 부화하는 일은 수컷의 몫이다. 혹시 펭귄의 품에서 알이 떨어져 얼어서 터지게 되면 펭귄은 울부짖는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아빠 펭귄이다. 아빠 펭귄은 어미 펭귄이 먹이를 구하러 떠난 동안 제자리에 동상처럼 앉아 거짓말 같이 2-3개월 동안 알을 품고 추위와 맞선다. 물 대신 가끔 눈 이외에는 생선 한 토막도 먹지 못한다. 때론 눈 폭풍이 몰아쳐 그대로 죽기도 한다. 마침내 “오모크”에 햇살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예쁜 새끼 펭귄이 태어난다. 이 때쯤 어미 펭귄은 사냥해 온 먹이를 가지고 도착한다. 놀라운 것은 어미 펭귄은 사냥해 온 먹이를 자신과 새끼들과 함께 나누어 먹지만 수컷에게는 결코 주지 않는다. 오랜 추위와 맞선 아비 펭귄은 기력이 쇠하여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동사하고 만다. 아! 누가 자식과 아내를 해외에 보내어 놓고, 땀흘려 번 돈을 송두리째 보내면서 홀로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빠를 “펭귄 아빠”라고 했는지 너무나 닮은 데가 많다. 동사(凍死)직전에 몸부림치고 있는 현대판 “펭귄 아빠”들을 어떻게 하면 좋으랴!

일쌍추안(一双秋雁), 그 날을 고대하며...

내가 어릴 적 자랐던 주남 저수지에는 해마다 청둥오리, 쇠기러기, 큰고니, 두루미, 오리 등 약속이나 한 듯 꼭 잊지 않고 찾아오곤 했다. 철새들이 해질 무렵 하늘로 날아오르며 펼치는 화려한 군무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하지만 저수지 근처에 살고 있던 시골사람들에게는 이 철새만큼 골칫거리도 없었다. 화가 난 시골 사람들이 농사를 망치는 이 철새들을 잡겠다고 야단을 칠 때 아무 영문도 모른 체 철새 뒤를 마냥 좇아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어리석게도 큰고니와 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희귀종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화난 시골 사람들이지만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를 볼 때면 이내 마음이 약해져 “저기 철새들은 어디로 가는가?” 하며 우수에 젖곤 했다. 신기한 것은 이토록 머나먼 대륙과 해양을 횡단하면서 철새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 어부들로부터 생선 토막이나 얻어 먹어먹겠다고 왔다갔다하는 제비갈매기는 이래봬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나는 새로, 자그마치 북극에서 남극까지 오고 간다는 새이다. 해마다 유럽과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2만여㎞나 떨어진 남극으로 이동해 겨울을 보내는데, 이는 매년 4만여㎞를 비행하는 셈이다. 이처럼 작은 철새들이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면서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그렇다면 “기러기 가족들” 또한 언젠가는 “기러기 아빠” 에게로 되돌아 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고국을 떠나 아빠를 기다리며 고생하는 “기러기 가족들” 이 다시금 일쌍추안(一雙秋雁, - 가을 하늘아래 짝을 지어 나르는 기러기)하는 그 날이 꼭 오길 기대한다.

- 필자 / 김학우[kmadrid@hanmail.net]
-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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