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의 영어이름은 ‘Testimony(증거) Yu’. 이름부터 복음증거자로서의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신학과 문서사역의 비전을 품었지만 주님의 뜻을 따라 20여년간 30여개 나라에서 해외선교에 헌신했다. 항상 그 나라의 가장 가난한 곳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유 목사는 철저히 현지인 중심체제를 고수하며 성공적인 해외선교사역을 감당해 왔다.
최근 유 목사는 후진 양성을 위해 국제선교신학원과 66권의 신구약 강해서 완간에도 힘쓰고 있으며, 5개 총회가 연합해 이뤄진 예장 합신연합총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그가 20년 해외선교 경험을 토대로 펴낸 선교일기(벧엘서원)를 본지에 연재한다.
▲황량하고 광활한 몽골의 광경처럼 당시 몽골의 영적 상황도 그러했다.
몽골에서 유학 중이던 한 젊은 형제가 찾아오다
1990년, 한국에서 한참 문서사역에 정열을 쏟고 있을 때 나에게 한 젊은 청년이 찾아왔다. 얼굴을 알지 못하던 형제였다. 그는 외국어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원을 거쳐 몽골 국립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위해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이 몽골에서 공부를 하면서 몇 사람을 구원받게 했으니 돌봐줄 수 없겠느냐고 말했다.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만 해도 몽골에 가려면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야 했다(홍콩, 북경 경유). 또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라 보안교육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여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 형제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고, 마음에 뭔가 와 닿는 느낌도 없어서 흔쾌히 답변을 해 주지 못했다.
그 형제는 그 뒤에도 한국에 들를 때마다 내 사무실에 찾아와 몽골의 상황을 말하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 주님께서 형제의 말을 주의깊게 듣게 하셨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됐고, 순종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형제와 몽골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기쁨으로 수고하며 함께하기를 약속하게 됐다.
이것이 오늘날 30여개 나라를 돌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의 시작이 될 줄은 주님만 아셨던 것 같다.
사역의 시작: 지쳐 쓰러질 때까지 전하고 또 전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몽골을 21번 방문했고(2008년 현재에는 45회가 넘어섰다), 갈 때마다 가난하고 불쌍한 몽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을지라도 족히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있었으리라 확신한다. 처음에는 아침 일찍부터 밤 11-12시까지 하루 종일 말씀을 전했다. 사람들도 한 번 숙소에 찾아오면 자러 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조금 가져간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전하고 또 전했다. 그들은 먹을 게 부족하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빵 하나에 홍차 한 잔 마시고 산다. 우리도 가져간 것이 변변치 않아 며칠이 지나면 서로 먹을 게 부족했다. 라면을 끓여 먹고, 인스턴트 미역국이나 북어국에 밥을 조금씩 말아 먹으면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은 항상 불탔고, 몸이 녹아져 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면 집 전화번호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님을 섬길 귀한 길을 열어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해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먼 길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복음: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다!
첫째, 우리는 그곳에서 불교의 일종인 라마교의 배경과 부딪혔고, 그 다음은 그 나라의 영웅으로 숭배받기에 이른 징기스칸에 대한 문제였다.
처음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니 그곳의 새로 믿은 형제자매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하나씩 가져왔는데, 알고 보니 다 우상단지였다. 징기스칸 우상, 부처 우상… 다 갖다 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것들은 다 헛된 우상이라고 하나하나 가르쳤다.
우리는 항상 외쳤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주시다. 생명이시다. 소망이시다. 공산주의도 헛되고 자본주의도 헛되고 이 세상도 모두 다 헛되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참되시다. 공산주의는 여러분을 속였지만, 그리스도는 참된 하나님이시다. 결코 여러분을 속이지 않는 분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매우 간단하나 힘차게 외쳤다. 다르한(수도에서 버스로 2-3시간 떨어진 곳)에 가서 전할 때는 조그만 아파트로 많은 동네 사람들이 복음을 들으러 왔다. 그들은 들으며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95년 몽골 복음화: 1년간 학업도 직장도 내려놓고 헌신하다
2년만인 1994년 다시 몽골에 갔고, 1개월간 묵으면서 60여 차례 집회를 가졌다. 그때 우리는 1995년 한해를 ‘몽골 복음화의 해’로 정했다.
수도 울란바토르가 점점 도시화되고,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그렇게 순수하던 몽골인들의 마음도 물질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때를 놓치는 것 같아 긴장했다. 한번은 집회에서 몽골 복음화를 부르짖으며 모든 것에 때가 있다고 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전 3:2)’고 했다. 몽골은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 “자! 학업을 1년 중단하고 직장도 1년 중단하고 온 몽골 땅을 다니며 복음 전할 사람들은 일어나라!”고 했다. 50여명의 형제자매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그 후 1년동안 눈물을 흘리며 몽골 17개 아이막(우리나라의 도(道))에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구원시켰다. 그때 10여개 지방에 실제적으로 교회가 일어나 지금까지 존재하며 전진하고 있다.
▲몽골을 위해 헌신한 역전의 용사들.
결산 집회: 따가운 직사광선에 까맣게 변한 얼굴들
1년간의 몽골 복음화 운동을 결산하는 집회는 실로 감동 그 자체였다. 그들도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로 충만했다. 또한 눈물의 제사도 드렸다. 예쁘장한 젊은 자매들의 고운 얼굴들이 몽골의 따가운 직사광선에 타서 까맣게 변해 있었다. 많은 눈물의 간증을 들었다.
2-3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이야기며, 수많은 시간을 걸어다녀야 했던 이야기며, 길을 잃어 북두칠성을 보고 방향을 잡으며 밤새도록 차를 몰아 서로 만나야 했던 이야기들…. 한국에서 방문했던 10여명의 형제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 실제 앞에 어떤 교리와 가르침을 줄 수 있으리요!
그야말로 어린 몽골 교회 성도들이 성경에 있는 사도들의 길을 가고 있었고,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들의 열매들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또 다른 나라로 보내소서!
어느 날 몽골에서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광경을 보며 주님의 위대하시고 복 되심을 다시 한번 느꼈다. 사람들은 징키스칸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이루었다고 높이 평가하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예수여! 당신이 위대하십니다. 이같이 황량한 땅, 불교밖에 모르고 공산주의가 철저하게 유린해 버린 사람들 가운데서 당신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 있는 하늘의 광경이 생각났다. 그날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중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나아와 보좌와 어린 양 앞에서 큰 소리로 찬양할 것이다. 우리 속에는 한 민족이 그리스도께 돌아간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이어 마음속에서 이러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이여! 그러면 왜 몽골 사람들만입니까? 아직 당신이 얻지 못한 나라와 민족이 있다면 당신은 얻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원하신다면 우리를 또 다른 나라로 보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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