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들려주는 김호남 목사의 목양 이야기
완당 김정희는 조선이 낳은 금석학, 고증학의 대가이며, 동양 삼국이 인정하는 천재 학자였다. 그는 또 우리에게 ‘추사체’란 독특한 필법과 서체를 인상 깊게 남긴 서화가이다. 그는 단지 학자로 머문 것이 아니라 실용학파인 북학파의 일원으로, 그의 꿈과 이상을 현실에 실현하다가 정쟁에 휘말려 멀리 제주도에 유배를 당한 불운한 천재였다. 조선시대의 유형이란 형벌은 죄인을 먼 곳에 유배시켜 격리 수용하는 제도이다. 죄질과 죄인의 신분, 유배장소에 따라 배,적,찬,방,천,사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정해진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시행된 것은 천사, 부처, 안치 의 세 가지이다. 천사란 고향에서 천리밖에 강제로 이사시키는 것이고, 부처는 중도부처의 준말로 유배에 처한 죄인에게 정상을 참작하여 배소로 가는 도중의 한 곳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다. 안치는 어떤 한 장소를 정하여 그곳 안에서만 거하게 하는 벌이다. 그 중에서도 본향 안치, 주군 안치 혹은 자원처 안치 등은 가벼운 형벌이고, 절도 안치나 위리 안치는 매우 엄한 형벌이다. 절도 안치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절해 고도에 유배하는 것이고, 위리안치는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서 머물게 하는 벌이다.
조선이 낳은 탁월한 학자이자 온 세상이 우러러 모시던 완당도 정쟁의 와중에 제주도 대정면으로 절도안치와 위리안치를 겸한 중 유배를 당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모질로 찬 세월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그의 유배 생활 중에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허심탄회한 우정을 나누었던 사람은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해남 대둔사의 초의 선사와 제자 허소치, 이상적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량세태의 시류를 좇아 귀양 간 사람을 멀리하고 힘있는 사람을 따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사는 모습은 다를 바가 없는 가 보다. 그 중에서 중인 출신으로 중국에 통역관으로 봉직하였던 제자 이상적은 ‘우선’이란 호로 불리워졌다. 그가 서울 권세가들의 눈치 속에서도 멀리 유배가 있는 스승 완당을 향하여, 일심으로 그를 섬긴 것은 참으로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 이상적은 스승의 독서열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중국에 갔을 때 당시로서는 귀하기 힘든 두 권의 문집을 구해 스승께 보내어 드렸다. 그 이듬해는 북경에서 하우경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이라는 총120권 79책에 달하는 방대한 문집을 어렵사리 구해 스승이 있는 제주도로 보냈다. 스승인 완당으로 하여금 감동케 하기에 충분한 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제자의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또 정성을 들여 쓴 세한도는 역사에 길이 남을 조선 문인화의 정수 중에 정수로 꼽힌다. 그것은 얼마 전에 불타버린 숭례문과 같이 국보180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 세한도의 발문에서 완당은 “날이 차가워진 뒤에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네”며 그의 제자를 향한 고마움을 표한다. 그는 허름한 집 한 채와 소나무와 잣나무 한 쌍을 그림의 중앙과 약간 우편에 배치시켰고, 오른편 쪽으로는 제자를 향한 애틋한 신뢰와 칭찬의 마음을 날카롭고 정갈하게 표현했다. 그의 천재성은 허름한 집 한 채의 모양에서 잘 나타난다. 그 집은 옆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정면은 정좌하고 있고, 그 정좌한 집의 입구는 또한 원형의 입구를 갖고 있는데(이는 조선집의 형태에서는 아주 특이한 것이다), 또한 원형의 입구는 또 집의 앉은 방향과 일치하는 아주 기묘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집의 지붕면은 원근법을 사용하여 갈수록 낮게 그려내었고, 반면에 그 끝의 쇠락함으로 방지하기 위해 집의 벽면은 뒤로 갈수록 오히려 우람해 지도록 그려내었다. 그래서 그 집은 원근법에서도 상하가 균형을 갖추고 있어 집이 허름하게 보이지만 무언가 꽉찬 집이라는 느낌, 쉬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란 느낌의 집처럼 보이게 그렸다. 얼마나 치밀한 구조인가! 그 옛날에 말이다.
그 뿐 아니다. 집 앞에 그려진 2그루의 소나무는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 한 그루는 땅에 깊이 뿌리 박힌 거목으로 풍상을 많이 겪었는지 가지가 많이 꺾여있다. 하지만 그 노송은 하늘 끝까지 마지막 기세를 치켜 세우며 제자에게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린다. 휘어졌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는 힘겨운 노송 곁에 아직은 작지만 곧고 바르게 솟은 젊은 소나무가 바로 제자 이상적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화면의 중앙에 위치한 두 그루 잣나무처럼 역사에 남는 무언가를 이루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림으로 말하고 글로 마음을 아우르는 그는 가히 당대의 귀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스승을 퇴락한 늙은이며, 권력에서 밀려난 쓸모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고, 끝까지 그를 모시고 섬겼던 제자의 사랑은 오늘 이 세태 속에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요즘 시드니에는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교회를 떠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목회자들을 등지는 사나운 모습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조금도 참아내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자녀교육이 참으로 걱정이 된다. 이런 충의나 신의가 가벼워진 시대에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던 완당의 세한도는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