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인생, 꿀벌 인생, 거미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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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우 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 (5)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김학우 목사(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독일 사람들은 근면한 사람을 ‘아마이제(Ameise)’라 부른다. 개미 이름에서 따온 ‘아마이제’란 말보다 독일인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교부 크리소스톰이 “꿀벌이 다른 동물보다 더 칭찬을 받는 것은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꿀벌들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 또한 틀리지 않는다. 근면한 사람과 유익을 주는 사람을 사회성이 발달한 개미와 꿀벌에 비유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는 꿀벌이나 개미의 마인드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퇴출 1순위, 개미의 정착성 마인드

“너희들은 꿀벌과 개미 같은 인생이 되라. 그러나 거미 같은 인생은 되지 말라”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수없이 들은 말이다. 개미의 한문표기인 ‘의(蟻)’를 풀어보면 ‘의(義)+충(虫)’으로, ‘의로운 벌레’라는 뜻이다. 개미는 오래 전부터 근면성, 협동성, 조직성을 가진 존재로 표현되어 왔다. 개미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 일을 서로 분담해 왔다.

그에 비해 사람은 약 200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비로소 ‘분업’이란 작업방법을 고안해냈다. 18세기 이전까지는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했다. 사람이 해온 작업방법이나 조직성은 개미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달되지 못했고, 늦은 감이 있다. 수천 년 전 구약성경의 지혜자는 이 사실을 알고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고 교훈했다. 한비자 같은 현인도 “짐을 진 개미가 갈 때 짐을 지지 않은 개미가 길을 비킨다”고 하여 “개미가 백성을 교화하는 분량은 도덕군자보다 많다”라고 교훈한 것은 개미에 대하여 좋은 이미지를 주기에 의심할 의지가 없다. 그보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개미에 대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간직해 온 것은 개미가 산업사회의 가치관에 걸맞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개미의 가치관은 걷잡을 수 없이 위협을 받고 있다. 개미 사회는 여왕개미, 수캐미, 일개미 등 아주 질서 있게 조직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일부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관찰한 결과 매우 비관적인 상황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예컨대 개미마다 번호를 붙여 특수 비디오로 추적해 보면 모든 개미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개미들 중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불과 15퍼센트 정도 뿐이고, 나머지는 괜히 휩쓸려 다니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미 빙빙 돌듯 한다”라는 격언이 생겼는지 모를 일이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 옆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놀고 있는 개미의 습성은 현대 기업조직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체계화된 공직사회나 기업도 생리상 일하는 자와 얹혀 사는 자를 막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개미와 배짱이’ 우화에서 보여주듯 소위 자기 배만 채우면 그만이라고 하는 개미의 보신주의 마인드는 현대 조직화된 기업의 최대 적이기도 하지만 퇴출 1순위이기도 하다. 지금 공직사회나 기업은 놀고 먹는 개미들이 누구며, 그들을 어떻게 쫓아내야 할지 고민 중에 있다. 러시아의 망명작가 솔제니친이 자기 조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현대의 젊은 신 개미족들은 추운 겨울에 찾아온 배짱이들을 외면한 채 디스코를 추며, 비축한 양식을 술과 향락으로 탕진한다”라고 경고한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붕괴 직전에 있는 여왕벌의 전통성 마인드

여왕벌과 일벌은 똑같은 알에서 태어난 유충이지만 6일간의 먹이에 의해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부화 후 3일 동안만 로열젤리를 먹으면 일벌이 되지만, 6일을 먹으면 여왕벌이 된다. 단 3일간의 먹이에 따라 45일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일벌이 되기도 하지만, 일벌보다 30배 이상 오래 살면서 일생 동안 약 200만개의 산란능력을 갖게 되는 여왕벌이 되기도 한다. 이런 꿀벌의 행동을 최초로 연구한 뮌헨대학 칼폰 프리쉬 박사는 여왕벌이 마치 입헌군주제의 왕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과 꿀벌들이 서로 대화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노벨상(1973년)을 받기도 했다.

유럽은 오래 전부터 마치 꿀벌의 세계와 같이 입헌군주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과거 권력의 상징이었던 왕과 왕실의 권위는 예전 같지 않다. 유럽은 왕정 제도를 놓고 끊임없이 논란을 제기해 왔다. 이미 프랑스나 포르투갈은 국민 스스로가 왕정 제도를 무너뜨림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영국 또한 왕실을 폐쇄하자는 논의는 한때 공포정치를 했던 크롬웰 이후부터 심심치 않게 제기돼 왔다. 현재 유럽에서 왕실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을 비롯, 벨기에, 덴마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그리고 프랑코 후 다시 왕실이 부활한 스페인이 있다.

유럽의 왕정제도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기본권인 자유와 평등, 참여와 그리고 청구권을 무시해 왔기에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왕정제도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작금에 유럽의 왕과 왕실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못해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어떤 유럽 잡지사는 “영국 왕실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영국 사람들이 무척 심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아마 영국 왕실이 없어진다면 부도 날 잡지사도 많이 생겨날 것이란 말이 기사화될 정도로 왕과 왕실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유럽만이 아닌 지금 세계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자리매김해 온 정통적인 마인드가 위협을 넘어 붕괴 직전에 와 있다. 지금까지 사회가 보장해 준 지위로 말미암아 혜택을 누려왔던 특수계층들이 점점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다. 현 정권이 얼마나 위기의식을 느꼈으면 대통령이 장관과 부처 책임자들을 앉혀 놓고 “백성의 머슴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겠는가? 여왕벌의 역할과 기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변함도 없다. 여왕벌은 그야말로 모든 벌들의 통치자이자 보호자로 일벌이 갖다 준 로열젤리를 먹을 수 있는 명분이 뚜렷하다. 그러나 오늘의 유럽 왕들과 왕실은 백성을 통치하거나 보호하기는커녕 일벌들이 먹어야 하는 로열젤리만 축내고 있는 실정이다.

네트워크의 원조, 거미의 이동성 마인드

“입에 거미줄 친다”라는 말은 가난한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놀고 먹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 날 거미는 새로운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몇 해 전, 사람이 거미줄에 매달려 빌딩 숲 사이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 맨’이란 영화가 인기리에 상영된 적이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다른 한 면은 거미가 갖고 있는 작업방법과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작업 마인드가 흡사하다는 점이다. 거미는 개미의 마인드와는 크게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개미와 달리 허공에다 집을 짓고 사는 거미는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거미는 공중에 거미줄을 쳐 놓고 기다리면 금세 먹이가 결려 든다. 거미는 기다렸다가 날쌔게 먹이를 채간다.

마치 현대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듯이 거미는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생존하고 있다. 개미와 거미의 생존 방식은 마치 조직화된 현대기업의 마인드와 정보사회의 마인드만큼이나 다른 가치관을 낳게 하였다. 개미를 정착성의 마인드라 하면, 거미는 이동성의 마인드라 할 만하다.

지금 유럽은 지도에서만 국경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국경이 갖는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유럽의 국경은 한국에서 ‘도’ 경계를 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역과 장소를 초월하는 이동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IT 산업, 인터넷, 핸드폰 등은 모두 이동성의 대명사들이다. 전통적으로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주간에만 일하던 시대는 지났다. 벤처 기업, 전문 직업인이란 이름으로 사무실도 없이 거미와 같이 가상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날 기업은 얼마만큼의 자본을 확보할 것인가 보다 얼마만큼의 정보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더 큰 과제로 삼고 있다.

오늘 우리는 거미가 허공에 쳐 놓은 거미줄과 같은 네트워크를 갖지 않고서는 살아 남을 수 없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적인 굴지 회사만이 아니라 개인 사업도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망이 없으면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 시대는 사회가 간접적으로 부여한 혜택을 가진 정통적인 마인드로나, 자기 중심적인 정착성 마인드로는 급변하는 시대 정신의 파고(波高)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과거 지탄받던 거미 인생도 꿀벌과 개미인생 못지 않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거미는 불도 없는 밤에 줄을 친다”고 말한 빅토리아 시대, 시인이자 이야기꾼인 디킨즈의 말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겨 볼 만하다.

- 필자 / 김학우[kmadrid@hanmail.net]
-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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