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동남성경연구원
초기 기독교의 부흥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물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경제적인 나눔의 현상으로 이어졌다(행 4장). 그런데 사도행전 5:1-11에는 그러한 아름다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그것은 아나니아와 그의 부인 삽비라가 자신들의 소유(땅)를 판 후에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이 생명을 잃게 된 사건이다.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악이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그들이 생명까지 잃게 되었을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the prophetic insight)으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위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베드로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초기 기독교가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행 5:4).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기 전에 그것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고, 땅을 판 후에도 여전히 그것을 판 값을 소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들의 돈을 감춘 이유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들의 문제점을 본문(행 5:1-11) 바로 앞에 있는 바나바의 예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행 4:36-37). 바나바는 자신의 땅(아그로스: 큰 규모의 땅)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여기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표현은 사도들이 마음대로 사용(처분)하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를 소개하면서 성경이 바나바의 출신지와 사도들이 지어준 별명을 언급한 것은 그의 업적을 칭송하고 사도들이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나바의 경우를 보고서 교회에서 바나바와 같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들은 작은 규모의 땅(코우리온)을 팔았는데, 이는 바나바가 판 큰 규모의 땅(아그로스)과 대조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판 값의 얼마를 감추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감추다’(노스피조)라는 동사는 문자적으로 물건을 슬쩍 훔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특히 70인 역(LXX)에서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진 전리품 얼마를 감추었을 때(수 7:1)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는 오직 딛 2:10에서만 사용되었고, 중간기 문헌에서는 마카비 하 4:32에서 사용되었음). 사도행전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구약성경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아나니아의 죄악을 아간의 죄악과 연관시킨 것이다.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하나님을 속였다고 말한다. 그는 아간이 전리품을 가로챔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아간과 같은 종류(맥락)의 죄를 범한 것이다. 즉 그가 범한 죄는 단지 윤리적인 차원의 죄가 아니라 교회의 신적인 정결함을 해친 신성모독 차원의 죄인 것이다. 이제 옛 질서가 사라지고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죄를 범함으로써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심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성한 교회를 경멸하여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방해한 자들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리신 것이다.
/한국동남성경연구원(원장 황창기 박사, www.koseb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