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들려주는 김호남 목사의 목양 이야기
오는 4월 10일에는 그간 기도하며 준비해 왔던 ‘시드니 신학포럼’이란 행사가 개최됩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습니다. 시드니에는 이미 2백여개의 크고 작은 한인교회와 한국계 선교단체들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역을 지원하고 비평하며 새롭게 강화하기 위한 연구단체가 없어 늘 아쉽던 차에 ‘시드니 목양신학 연구소’가 3년 전에 이 일을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경제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나, 산업발전을 위한 공업과 교육 등 모든 사회의 발전을 위한 영역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그 일을 좀 더 효과있게 섬겨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며 이를 위해 투자하는 일은 이제 존립을 위한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드니에는 그런 연구기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라 옛 어른들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의 유력한 부인 마리아의 아들이며, 바나바의 조카였던 요한 마가의 삶이 생각이 납니다. 그는 삼촌이었던 바나바의 권위에 힘입어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는 특권을 누렸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그 전도여행에서 그의 리더였던 바울에게 실망을 끼쳤고, 그래서 제2차 전도여행에서는 바울이 그를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2년 정도가 지난 후 마가는 다시 결심하고 옛 스승을 따르게 되며 그들의 관계는 회복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바울도 나중에는 마가를 끔찍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을 성경을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감동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깨어졌었고 헝클어져서 서로에게 실망과 아픔과 분노를 주었던 기독교 사역자들이 결국에는 서로를 기쁨으로 용납하며 함께 동역하는 아름다운 전통과 기풍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시드니 신학포럼을 준비하면서 내내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단 한 번의 행사와 특강으로 어떻게 사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겠습니까. 하지만 주님, 이번 포럼을 통해 영혼의 의사로 나선 우리 목회자들이 다시 첫 사랑의 거룩한 소명의 자리를 회복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비록 척박한 이민 목회라는 현실 속에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목회사역을 완주할 수 있도록 첫 소명의 열정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독자들도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래의 글은 이번에 발표되는 논문 중 시드니에서 사역하시는 한 선배 목회자의 글입니다. 이런 현장 속에서도 묵묵히 주님의 부르심을 소중히 여기며 몇몇 안되는 영혼들을 붙들고 기도하며 사역에 헌신하시는 신실한 목회자님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심심한 경의를 표합니다. 이민목회의 현실이 비록 수천 수만의 성도를 거느리며 힘깨나 쓰는 성공 지향적 목회가 아니라 할지라도, 주님의 마음으로 이곳의 향취를 흠뻑 머금고 이곳에 사는 영혼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메이드 인 시드니’ 목회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충만하기를 또한 기도 드립니다.
“30여 년 전 시드니 킹스포드 비행장에 내렸을 때, 주머니 속에는 단돈 5불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시내 하이드파크에서 노숙을 하고, 신문과 빵을 사서 일자리를 구하고 허기를 메우며 호주에서의 새 삶을 출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하루 20시간씩 일하며 이 일터에서 저 일터로 옮겨가는 중 자동차 안에서 새우처럼 2~3시간 눈을 붙이며, 그야말로 악착같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뼈를 깎아가면서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한 사람들의 이야기, 서부 호주의 광산 지역에서 오직 ‘일하는 것’ 하나만을 낙으로 생각하며 지내오다가 밀려오는 고독과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300-400Km나 떨어져 있는 친구를 찾아가서 겨우 한 두 시간 놀고 또 다시 차를 몰아 숙소로 되돌아온 사람의 이야기.
갑자기 밀어닥친 이민 경찰을 피하여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도망하였는데 며칠 후 사면령이 내려 영주권을 받게 된 사람의 이야기, 지금도 20년 넘게 불법체류자의 신세로 살아오면서 메디케어도 없고, 여권도 없고, 운전 면허증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가족도 없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 교통경찰만 보아도 겁이 나고, 거리에서 주차 단속 하는 사람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며,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데도 도망치듯이 허둥대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어를 몰라 멸시당하고, 또 부당하게 권리를 박탈당하면서,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벙어리의 혀가 풀리리라(이사야35:5)’는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바벨론에서 포로에서 돌아오는 날의 기쁨이 아닌, 영어를 잘하게 되는 날의 기쁨일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깨어진 가정의 이야기와 그 자녀들의 피를 토하는 듯한 아픔의 고백들, 분열된 교회의 상처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도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니면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아직도 시원하게 그 원인을 모르는 채 싸늘한 시체를 받아 장례를 치른 서러운 자녀들의 이야기! 다시는 시드니를 향하여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머리를 흔들며 떠났던 사람들이 불법이 되더라도 다시 이곳에 살겠다고 짐싸들고 와서는 월남쌈 한 접시 받아놓고 눈물 흘리는 삶!”
그것이 바로 시드니 이민자의 삶이며 우리 성도들의 삶의 치열한 현장 아니겠습니까? 목사님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떤 목사님은 호주 교단에 속한 한국교회를 18년이나 섬겼는데 사임할 때(보통 한국교회가 하듯이 당신도, 교회도 퇴직연금을 들지 않았다) 아무런 노후보장 조치가 없이 그 교회를 떠났다 하니, 교단이란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목사님은 그래도 꽤 자리잡힌 교회의 담임이었는데도 그 모양인데, 다른 작은 교회의 상황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한국 최고의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자신의 전공과 능력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따라서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것은 자신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전체에 심각한 손실을 주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고민하며, 함께 아픔을 아우르며, 기도하기 위해 연구소가 신학포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마가와 바울 같은 회복을 바라며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할 때 서로 생각이 짧아 서로에게 불편을 끼쳐드렸다 하더라도 우리가 크리스천임을 인하여 서로를 용납하고 마가와 바울의 멋있는 동역의 재회가 곳곳에서 일어나며, 힘차게 ‘메이드 인 시드니’의 향기를 풍겨내는 아름다운 믿음의 꽃들이 만개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