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이 옳아야 열매도 옳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기뻐하심과 불쌍히 여겨주심이 있음을 감사드린다.헝가리에서
1998년 3월 18일, 헝가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디스아바바에서 밤새도록 비행기로 가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아침 8시 25분. 헝가리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피곤함은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래도 주님을 위한 몸의 소모(decaying of the body)라고 생각할 때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며칠 간 거울도 제대로 못 보고 아프리카에서 지내다 공항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좀 부어있는 것 같았다. 음식이 맞지 않아 식사를 제대로 못한데다 교회 상황이 어렵게 돼 마음에 상당한 중압감을 느껴서인지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교회가 새롭게 되고 안정을 찾게 된 것은 어떠한 축복인가! 부끄럽게도 어릴 때를 제외하고 며칠 간 배고픈 것을 느낀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얼마나 수치인가!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가 있었다. “주여!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기 원합니다.”
3월 21일, 간절한 기도와 넘치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
3일간 B형제와 A자매와 쉬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 몸의 피곤도 많이 사라졌다. 3일간 오후 내내 집회들을 가졌다. 아담, 죠셉, 에리까, 먼저 Q형제 집에 살던 자매님 일행 등 괜찮은 사람들이다. 뻬떼로라는 대학 기독교 써클 인도자도 만났다.
B형제에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고 수고가 필요함을 일깨웠다. 양면이 있는 것이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의뢰하는 자세와 앙망하는 영이 좋았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하나님은 피동적인 자들을 축복하시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전진하는 자들에게 길이 있다. 반드시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적극적인 기도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원하시지만 사람의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스팍스(T.A. Sparks)는 교회의 세워짐은 많은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건축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뿐만 아니라 넘치는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고난은 그분 혼자 감당했지만 교회를 건축하는 고난은 사역자들에게 남겨두신 몫이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있어 악한 자가 참된 그리스도의 간증이 일어남을 찬성할 리 없다. 많은 방해가 있는 것이다. 많은 수고와 고난은 이래서 필요하게 된다. 많은 시간의 싸움과 소모는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결과와 이어지게 된다.
육체로 시작하며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는 것은 더욱 좋지 않다. 주님의 일에 있어 육체는 지위가 영원히 없다. 그러나 믿음과 성령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동역과 열심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사람이 있고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의 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의뢰해야 한다. 한면 성령의 인도가 있지만 피동적으로 게으름에 빠진다면 또한 역사가 없게 된다.
출애굽기 17장에서 산 위에서 기도하는 모세가 있지만, 아래서는 칼날로 계속 아말렉을 도륙하는 여호수아가 있는 것이다.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이긴 후, 아합에게 큰 비가 있을 것을 말한 다음 꿇어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사환에게 일곱 번이나 나가서 비가 오지 않나 보라고 했다. 그는 기도하고 사환은 계속 나가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음에는 손바닥만한 구름이 있었다. 이때 엘리야는 비에 길이 막히지 않도록 아합에게 돌아갈 것을 명했는데, 이것은 믿음으로 한 행동이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큰 비가 내렸다.
나는 헝가리에 이러한 역사가 있기를 기대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이태리 밀라노를 향했다.
이태리에서
3월 21일, 믿는이의 하나
믿는이의 하나는 죄와 세상과 그리스도 이외의 것들을 교묘히 감출 수 있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죄와 육체를 철저히 처리한 결과여야 한다.
3월 22일, 교회의 본부는 하늘에 있다
이 땅 위에는 교회나 믿는 이들의 본부가 없다. 본부는 오직 하늘에 있다. 믿는 이들이 땅 위에서 사람을 중심삼아 하나 되고 일하는 것이 카톨릭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중심 삼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일해야 한다. 우리의 하나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성경 진리 위에서의 하나여야 한다.
3월 24일, 사역이 옳아야 그 열매도 옳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3-4)’
많은 형제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우리의 사역의 앞길에 많은 장애물들과 방해가 예상된다. 또한 이미 장애가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무기는 무엇인가? 육체가 아니다.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 혈기는 무익한 것이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다. 많은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이 바울이 세운 교회를 흔들어놓을 때 바울이 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말씀의 날선 검을 사용했다. 또한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다. 어두운 상황이 올수록 빛은 더욱 찬란하게 드러났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진리는 이렇게 해서 달음질해 왔다. 반대와 공격이 있으며 어두움의 권세가 있을 때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해방해 온 것이다. 이태리에, 헝가리에, 불가리아에 모두 역사가 있다. 에디오피아가 안정됐다. 어려움들이 닥쳐오지만 승리도 있다. 주님께 감사한다. 방해가 있지만 진리가 있다. 어두움이 있지만 빛이 있다. 육체가 있지만 성령의 능력이 있다. 십자가의 능력이 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기뻐하심과 불쌍히 여겨 주심이 있음을 감사드린다.
오늘날 교회가 약한 상태에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역이 합당치 않기 때문이다. 사역이 옳아야 사역의 열매가 옳은 것이다. 고난과 절대적인 태도를 갖지 않은 사역이 어떻게 절대적인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의 사역이 사도 바울 시대의 교회들을 산출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유동근 목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