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의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문학평론가 활동 50여년만의 첫 시집 발간

▲지난달 30일 연세대에서 강연하는 이 교수의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지난달 30일 연세대에서 강연하는 이 교수의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최근 기독교인이 된 ‘한국의 대표지성’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문학세계사)’가 출간됐다.

이 교수는 30일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번만은 정말 홀가분하게 한 사람도 안 읽더라도 정말 쓰고 싶은 것만 쓰겠다는 심정으로 썼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말처럼 시집의 첫 주제는 ‘포도밭에서 일할 때-하나님에게’이고, 첫 시의 제목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이다. 이 교수는 지난달 30일 연세대가 주최한 미래교회 컨퍼런스에서 이 시의 배경에 대해 “몇년 전 1년간 일본에서 혼자 공부하던 시절, 혼자 자취하면서 밤마다 절대 고독 속에서 내 한계를 절감하고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며 이 시의 한 구절을 읊었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중략)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이렇듯 캄캄해 보이기만 하는 절규는 다음에 나오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에서 빛을 만난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이제 아닙니다./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 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시 밑에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놓았다. “민아(이 교수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긴 전화였다. 하나님 이야기를 한다. 그애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믿지 않던 신의 은총을 생각한다. 무슨 힘이 민아를 저토록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애가 그 아픈 병에서 나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과 비록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어도 그것이라면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바칠 수가 있다. 그래서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을 썼다.”

그러나 이 교수는 그 딸과의 약속을 결국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는 딸이 치유받은 ‘기적’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포도밭에서 일할 때’, ‘탕자의 노래’, ‘길가에 버려진 돌’, ‘하늘의 새, 들의 백합꽃’ 등의 신앙시를 썼다.

시집을 쓴 것에 대해 이 교수는 “시를 썼습니다.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리고 보여서는 안 될 달의 이면 같은 자신의 일부를 보여준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첫 시집 발간에 대해 “시는 후회를 낳고 시를 낳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 첫시집은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쁜 빛의 축제처럼 즐겁습니다.”라는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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