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해서 군에 입대… 쫄병 생활이 남긴 것들
고시 합격자는 장교로 군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병으로 군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고 논산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졸병 생활을 자원한 이유를 남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저의 선택이유는 분명했습니다.‘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컸지만 그래도 부모를 잘 만나 대학까지 나오고 더구나 고시까지 합격했으니 대접받고 살아온 셈이다. 이제 군대생활에서나마 다시 대접받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광주고속터미널 앞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논산으로 향했습니다. 나이 먹어 군대 가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계속 눈물을 흘리시며 고속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계셨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는 26연대에 투입되어 예닐곱살 아래의 아우뻘 되는 전우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기합받고 사격을 하며 지냈습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상관들의 호된 기합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훈련을 마친 뒤 붙여 준 이등병 계급장이 5만 촉광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8명이 더블백을 매고 자대에 배치됐습니다. 저희 8명의 군번을 부르더니 ‘육사’라고 말해 우리는 모두 6사단에 배치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간 곳은 태릉이었으며 육군사관학교 사병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도련님이라면 사병들은 도련님을 위한 머슴들이었습니다. 그중 이등병은 머슴들의 머슴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났습니다. 남을 섬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어려운지 알았습니다. 육사생도들을 지도하는 말 중에 ‘철저히 복종할 수 없는 사람은 남을 복종케 할 수도 없다’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틈틈이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보초를 설 때 영어회화를 해보고 일본어 단어를 외웠습니다. 또 영어를 잘하는, 내 두 달 후임병 나병룡을 만나 영어에 큰 보탬이 됐습니다. 그는 영어에 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큰 고민중의 하나는 ‘AFKN 뉴스에서 지난번 어떤 문장의 억양이 이랬는데 왜 지금은 바뀌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을 만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익스피어는 인생을 ‘만나서 알고 사랑하다 헤어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는데 나병룡과의 만남은 저를 영어의 세계에 몰입케 하였습니다. 점차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저는 같은 나이의 고시동기인 친구 공민배(전 창원시장, 지적공사 사장)를 이등병 달고 있을 때 군대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변소청소 하다 만나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같이 쫄병 생활을 하고 유격훈련을 받으면서 저희는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인내심 있고 통 큰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군대에서는 이 밖에도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대입 예비고사에서 남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대한민국 정부의 엘리트 부서인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일했으니 내가 제법 똑똑하고 잘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이등병이 제일 바보였으며 병장이 제일 똑똑했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이등병 중에서도 나보다 못 배운 사람, 막일을 하다 온 사람도 내가 아무리 힘써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뭔가 나름대로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자신이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잘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아,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구나. 내가 운이 좀 좋거나 축복을 받아 좋은 부모 만나 대학이라도 나와서 이렇게 된 것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구나’하는 깨달음과 회개를 하게 됐습니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지면 나는 곧 무너진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나는 무슨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곧 무너진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가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다시 절실히 음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송하성 박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