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IV)
역사적 연구의 한계
고고학적 연구만으로는 우리는 단지 외형적으로만 예수의 역사성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에 대한 신앙을 가지는 것은 이와 별개다. 예수 인격에 대한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남으로써 이루어진다. 1세기에는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천래의 음성을 듣는다. 그는 타고 있던 말에서 떨어져 며칠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신체적 충격을 동반하는 영적 경험을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 아나니아를 만나 안수를 받고 눈멈을 치유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만으로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 여기에는 신앙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 예수에 관해 질문하면서 신앙의 그리스도를 말하게 되는 이유이다. 신앙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이요, 쿨만이 말한 바와 같이 시간의 중심이요 세계사의 정점이라는 것을 깨닫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의 두가지 측면
나사렛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은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역사적인 측면의 실재, 다른 하나는 신앙의 측면에서 드러나는 실재이다. 역사적 측면에서 보여지는 나사렛 예수는 역사적 예수라고 한다. 이것은 알버트 슈바이처를 비롯한 19세기 신약학자들이 탐구하기를 시도했던 대상이었다. 신앙의 측면에서 보여지는 나사렛 예수는 신앙의 그리스도라고 한다. 이것은 예수를 따르고 신앙을 가지고 고백했던 초대교회가 가졌고 오늘날 기독교회가 고백하는 예수상이다. 역사적 예수가 과거 2천년 전에 계셨던 과거의 인물을 말한다면, 신앙의 그리스도는 초대교회와 그를 믿는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이신 현재의 인격을 말한다. 역사적 예수가 과거에 살았고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던 예수라면, 신앙의 그리스도는 오늘날 기독교회와 신자들에게 신앙고백의 대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살아 있는 예수이다. 그리고 역사의 미래에는 앞으로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역사적 예수
역사적 예수는 주후 30년경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 전파와 더불어 공적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는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당시 유대교 지도자와 로마 총독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유대교 지도자는 그를 모세의 율법을 훼손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다 하여 신성모독죄로 고발하였다. 그리고 로마 총독의 경우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함으로써 수천명의 무리들이 따르는 그를 치안 소란범으로 간주하였다. 빌라도 총독은 특히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예수를 당시 로마황제의 통치를 부정하는 반체제 인물로 몰아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였다.
세상의 자료들은 여기까지만 확실하다. 그 이상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복음서는 우리에게 그 실재적인 진실을 알려준다. 복음서를 기록한 기자들은 이 역사적 예수의 진실이 바로 역사의 의미요 목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들은 자료들을 모으고 편집하여 네 복음서를 저술한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역사성과 진실을 우리들에게 알려준 자들이다. 네 복음서는 한결같이 증언한다: 역사적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고 난 뒤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 역사적 흔적으로 빈무덤이 있다. 유대교를 비롯한 당시의 관원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스승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내었다. 그러나 예수는 승천하셨고 하나님 우편에서 왕으로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앞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영지주의 이단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육신이 된 하나님 강조
『예수는 신화다』의 공동저자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가 속하고 있는 영지주의 종파는 사도 요한이 살았던 1세기의 종파로서 영의 그리스도를 육신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들은 플라톤의 이원론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였다. 그리하여 정신은 선한 것이나 육신을 포함하여 물질은 썩는 것으로 간주하고 종교적으로 쓸모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이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육신과 피를 가진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정한 그리스도는 순수 영적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주장은 신적 본질의 이념이 아바타(avatar, 화신(化身))를 통해서 계시되고 있다는 오늘날 힌두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초대교회는 이러한 주장을 한 종파의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온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다”(요일 4:2-3)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영지주의의 주장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나사렛 예수 안에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요 1:14)고 증언하고 있다
인식의 관점(신앙)이 중요하다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데도 탐구자의 태도, 즉 인식의 관심이 중요하다. 이 태도는 탐구하는 자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동일한 예수 부활 사건에 관하여도 초대교회 종교 지도자들은 제자들이 환상을 보았다거나 빈무덤에 관하여서는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식으로 자신들이 가진 고정관념에 따라서 사실을 왜곡하였다. 프리크나 갠디 등 영지주의자들은 신약의 복음서가 보도하고 있는 역사적 예수의 진실에 관하여 그것을 이방종교의 신화에서 각색한 것으로 왜곡하였다. 청년 사울조차도 다메섹 도상에서 영적 체험 이전에는 예수를 하나의 유대의 율법을 무너뜨리는 신흥종교의 교주로 보았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영적 만남을 통해서 바울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것이다. 인식의 관심이란 탐구하는 자의 태도이며 이것은 바로 신앙과 연결된다. 신앙 없이 아무리 역사적 자료를 들여다 보아도 예수가 “현자”, “기적을 행하는 자”, “반체제 인물”, “열락을 좋아하는 자” 등의 평가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예수가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은 신앙에 의해서는 가능하다.
신앙의 그리스도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은 역사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태초의 말씀”으로 본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예수의 12제자들은 “랍비”(선생님)라고 부르면서 예수를 따랐다. 예수는 당시 변두리요 소외지역이었던 갈릴리에서 그의 복음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설교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앉은뱅이와 귀머거리 등 불치병자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고쳐주셨다. 가이샤 빌리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물으셨다. 이에 그의 수제자인 베드르가 예수님에 대하여 신앙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눅 9:20). 예수님은 이 베드로 고백을 시인하시고, 그가 메시아인 것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하신다. 이것이 “메시아의 비밀”(Messianic secret)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메시아임을 드러내지 말고 한 것은 자유주의 해석가들이 말하는 바 메시아적 자의식이 결여된 증거가 아니라 천국의 비밀이며, 십자가의 비밀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으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에게 숨겨지고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자에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천국은 마음이 교만한 자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역사적 예수가 바로 신앙의 그리스도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예수는 서로 다른 인물이 아니다. 역사적 예수는 하나의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오신 역사적인 인물인 나사렛 예수를 가리킨다. 이에 반하여 신앙의 그리스도는 이러한 역사적 예수 안에 있는 나사렛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가르키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단지 역사적 문서만을 가지고 그를 연구한다면, 별 신통한 결론이 나올 수 없다. 19세기의 신약학자인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그를 묵시록적 세계종말의 세계관에 지배된 매우 성격이 우울한 그 시대와는 격리된 인물로 묘사했다. 이와는 반대로 프랑스의 인문주의자 르낭(Ernst Renan)은 나사렛 예수를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화꽃를 보라.” 등 자연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 달콤한 인간애주의자로 묘사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독일의 신약학자 불트만(R. Bultmann)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분리하였다: “주님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요, 선포된 분이다.” 이에 대하여 불트만의 제자들은 반기를 들었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별개의 인물이라면 독일의 신약학자 케제만(E. Käsemann), 본캄(G. Bornkamm) 등이 말하는 바같이 기독교 신앙은 역사 없는 공중누각에 서게 된다. 그리하여 불트만의 제자들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독일 조직신학자 마르틴 캘러(Martin Kähler)는 “소위 역사적 예수는 선포된 그리스도”라고 말하였다. 오늘날 영국의 신약학자 브루스(F. F. Bruce). 독일 신약학자 헹엘(Martin Hengel), 베처(Ottp Betz) 등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는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역사적 시각과 신앙적 시각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을 떠나서는 단지 육신을 쓰고 나타나신 역사적 예수를 알 수 없다. 19세기와 20세기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가 결국 실패로 끝난 이유는 신앙적 접근 없이 단지 역사비판적 과학적인 시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 학자들에게 들어오는 것은 당시 시대문화에 생소한 반응을 보인 시대착란증에 걸린 예수(알버트 슈바이쳐),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한 휴머니스터(에른스트 르낭), 복음서의 예수는 역사적 예수와는 다른 신앙고백의 산물(불트만) 등이었다.
역사적인 시각과 신앙적 시각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신앙의 눈은 반대로 역사적 논구를 등한시해서는 않된다. 역사적 논구에 들어오지 않는 예수는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오신 역사적 예수가 아닌 신비스러운 영의 예수, 영지적 예수였다. 이러한 예수가 바로 이단이라는 사실을 초대교회 예수의 제자 사도 요한은 경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