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엑스포에 관람객 1천만명 ‘무모한 도전’
미국 유치에 가속도가 붙어 110여개국이 엑스포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자 오명 위원장은 곧 저를 홍보부장으로 발령을 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명을 내렸습니다.“송 부장, 110여국의 나라가 엑스포에 오니, 이번에는 관람객 1천만명을 넘도록 하시오.”
저는 신명을 다해 관람객 유치에 힘썼습니다. 그때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제가 벌였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엑스포의 밤’이라는 행사였습니다. 내무부를 설득하여 각 시·도지사 주관으로 ‘엑스포의 밤’이라는 행사를 개최하게 한 것입니다. 물론 저와 홍보부 직원들이 영상으로 엑스포의 맛을 보여주고 엑스포 개최의 의미와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엑스포란 이름으로 시·도지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울시부터 제주도까지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엑스포를 정의할 때마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엑스포란 한 시대가 이루어 놓은 것을 집약 전시하여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다.” 즉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엑스포 명예홍보위원 제도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사실 엑스포가 무슨 박진감 넘치는 스릴이 있는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도 아니고, 무엇을 전시하는 것에 불과한데 1천만명을 넘긴 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엑스포 장 내에서 유명 가수들이 공연을 하도록 해서 손님을 유치하는 작전이었습니다. 문화관광부를 통해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엑스포조직위에서 연예인(주로 가수) 10명을 명예홍보위원으로 임명해서 나라 일에 적극 협조하면 후에 크게 표창한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제일 먼저 전화가 온 사람이 패티김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제 머릿속에 가창력 있는 가수는 패티김, 조용필, 윤시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패티김이 먼저 손을 드니 바로 임명하고 언론에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제 어머니가 좋아하는 동백아가씨의 이미자 씨가 전화해 와서 바로 임명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조용필, 국악인 조상현 등을 차례로 임명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주도 우근민 지사로부터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명예 홍보위원은 뭍 사람들만 다해먹고 우리 섬 제주도는 홀대하느냐는 항의성 전화가 온 것입니다. 우 지사는 총무처 인사과장으로 있을 때부터 아는 사이여서 친근하게 “지사님, 누구를 추천하려 하십니까?” 했더니 고두심씨를 추천했습니다. “아니, 가수는 노래를 불러서 사람들을 모은다고 하지만 고두심씨는 탤런트인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했더니 우 지사는 일단 고두심씨를 만나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엑스포를 위해 도우미 옷을 입고 명예도우미로 봉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명예홍보위원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하는대로 밀어주던 오명 위원장이 저를 불렀습니다. “송 부장, 좋은 사람들을 명예홍보위원으로 임명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도 좋지만 젊은 사람이 한 명 쯤은 들어가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반문했습니다. “위원장님, 혹시 생각나는 젊은 가수가 있습니까?” 오명 위원장은 서태지가 어떠냐고 하면서 추천했습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서태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서태지는 명예홍보위원으로 해주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면서 단번에 받아들였습니다. 바쁘게 명예홍보위원을 위촉하던 중 마지막 남은 한 자리는 엑스포 홍보사절이 입는 옷을 국제대회에 걸맞게 수준 높게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앙드레 김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관람객은 1,200만을 넘었습니다. 성취와 보람은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성취의 배경에는 제 나름대로 대전 엑스포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자신감은 그 일에 대한 비전과 확신에서 생겨나며, 자신감이 있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송하성 박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