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로마인 미국에서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다
1996년 8월, 공정위 독점국 공동행위과장으로 일하는 중에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외교관으로 발령을 받아 이번에는 미국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박봉의 공무원 생활만 하다가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교관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미국에 가니 제 집이 2.2에이커나 되었습니다. 근 3천평이 되니 파쓰리 규모의 골프장을 2개나 만들 정도였습니다. 좋은 차에 좋은 집에 애들은 좋은 학교를 보내고 저는 파티에 참석하고 토요일이면 골프치고 일요일에 교회나 갔다 오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 중에 늘 이런 응답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농사꾼, 나무꾼, 풀거름, 풀떼기 소년에 불과한 나를 하나님이 이 시대의 로마인 미국에까지 인도하셨구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은 나더러 외교관 생활을 즐기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를 훈련시키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싫든 좋든 미국이 세계를 움직인다. 미국은 법이 지배하는 나라다, 따라서 미국을 알려면 미국법을 알아야 하고, 미국법을 알려면 로스쿨을 가야 한다. 그래서 미국변호사 국제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미국 최대 명문 법대 중 하나인 조지타운 대학 로 스쿨(Law School)에 원서를 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상·하원 의원, 정치인, 법조인 등 유명한 사람들이 바로 이 대학 출신입니다. 법학 석사과정(LL.M)은 한국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만 입학 응시자격이 주어집니다. 지금까지 예외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사법시험을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여 변호사가 된 사람에게는 사법연수원 교육을 법과대학 교육으로 인정하여 합격시켜준 일이 한번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저는 경제학과를 졸업한 사람으로 애시당초 응시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법을 집행한 것, 또 고시에서 법 과목을 공부한 것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자격이 심사대상에서 제외돼 불합격했습니다.
“송하성, 당신은 본래 원서를 낼 자격이 없기 때문에 합격·불합격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보통 이 정도 상황이면 이렇듯 탄탄하고 높은 불가능의 벽에서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 건전한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솔본느 대학에서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도전하리라 마음먹고 1년을 준비했습니다. 우선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죽은 하나님이 아닌) 아버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당신. 나를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조지타운대 로스쿨 도서관 뒤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법이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다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Law is not ultimate goal, but a tool for justice).’ 이렇게 기도하고 실무자들에게 매달리고 자주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더니 자주 찾아가니까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토플점수를 610점 이상 맞고 미국 연방정부 장관들의 추천장을 받아오면 보다 호의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토플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대사관 제 사무실에도 단어장을 놔 두고 단어를 외우는가 하면 차에도 가지고 다니며 너무 차가 밀려 오랫동안 정지할 때 단어를 외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내가 이 나이에 청승맞게 무슨 짓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큰 꿈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장애물은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입학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토플 610점 수준의 영어실력을 인정받은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또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안면을 갖게 된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장 로버트 피토프스키(Rovert Pitiofski), 법무부 부장관 조엘 클라인(Joel Klein)에게 부탁해 입학 추천장을 받아 다시 응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입학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과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통해 알아보니 그렇게 해도 자격미비로 입학허가 심사위원회에서 나를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아 앞이 깜깜했습니다.
송하성 박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