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선교일기 2-1] 25년간 섬기던 교회를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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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년 후, 선교일기 시즌 2의 시작

서문

선교일기 1권을 쓴 지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같은 느낌이 하나 있다. 많은 강해서나 설교집을 내는 데는 주저함이 없이 좀 담대한 나이지만, 간증집을 내려면 무언가 주저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일과 관련된 것을 피할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자칫 사람의 어떠함이 드러나고 주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일이 있을까봐, 개인의 느낌이나 생각이 거룩하신 주님의 일에 묻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속의 밀어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고 주 안의 사랑하는 자들과, 그 분이 함께하시며 이루신 아름다운 일들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 뿐이다. 그러나 어찌 달콤하고 기쁜 느낌뿐이랴! 7년의 세월이지만 수많은 괴로운 일들과 즐거운 일들이 교차하며 회오리같이 지나갔다. 오늘날에 와서 주님은 나에게 더 많은 평안을 주시고 평안 가운데서 이 글을 쓰게 하신 것을 감사드릴 뿐이다. 아멘.

2007년 12월 18일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거의 다 떠났다

▲IMC에서 세계 여러나라 성도들에게 강의하는 유동근 목사.먼저 1부에 등장하는 많은 사랑하는 자들이 2부에 다시 나올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먼저 나의 부족한 점들에 많은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또 하나님의 뜻 가운데 된 일로 여겨져 하나님을 경배한다. 나는 사역하면서 사도 바울이 사역의 후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떠난 것을 체험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딤후 1:15)’. 바울은 그들에 대해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 4:16)’고 했다. 이것이 진정 내 고백이다. 어떤 이는 자기 나름대로의 사역을 위해 떠났고, 어떤 이는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삶을 위해 갔으며, 어떤 이는 신학교에 들어가 장래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때는 그들이 많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도 있고 옛 일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날 눈물도 많이 흘리고 괴로움과 아픔도 많이 겪어야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주님께 맡겨야 하리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역촌동으로

25년간 생활하던 교회를 뒤로 하고 떠날 결심을 한 것은 떠나기 5-6년 전 쯤 된다. 17년은 내가 그곳에서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 교회를 내가 세운 것은 아니고 다만 세우신 분이 일찍 돌아가신 연고로 젊은 사람들 몇몇이 후에 세워져 사역하게 된 것이다. 33세부터 50세까지 섬겼으니 젊음을 거기서 다 불태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 건물도 5년을 헌금해서 지하 2층, 지상 6층 건물을 짓고 나는 6층 목사관에서 살고 있었다. 학생 센터를 짓고자 두 채의 집도 사 놓았고, 문서 사역을 통해 꼼꼼히 모은 돈으로 법원, 교대 근방에 사무실용으로 오피스텔도 분양을 받아 놓았다. 모든 일에 젊음과 정열을 다 쏟았고 젊은이들을 위해 특히 온 힘을 다했다.

일 년에 두 번 방학 때마다 대학 청년들을 위한 집회를 했고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인도했다. 중·고등학생들은 매년 증가해 1200명까지 모일 수 있었고 대학 청년도 800명 남짓 됐다. 물론 나 혼자 사역한 것은 아니고 함께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전하는 말씀에 있어서는 언제나 내가 책임을 졌다. 이 일은 7년여 계속됐다. 때때로 사역을 위해 여러 교회들도 방문했고 해외 교회들도 많이 방문하였다. 자연 국내외에 오래 함께한 주 안의 친구들도 많고 사랑하는 자들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나를 귀히 여겨주기도 하고 감사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우리 마음의 깊은 속에 교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상황은 내가 애를 쓴다고 해서 개선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노력도 많이 해 봤고 기대도 했지만, 갈수록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1995년쯤 됐을 때 나는 그곳에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방 행동에 옮길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그 교회에 맡은 것이 여러 가지로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시의 교회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주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신 것을 말하기 원할 뿐 과연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말하거나 어떤 단체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누구든지 옳다 하나 백퍼센트 옳기 어렵고, 옳고 그름을 말하다 보면 자연히 자신에게 쏠려 판단의 잣대가 주관적이 되기 쉽기에 그런 말은 자세히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본다. 나 자신도 그들에게 받은 은혜가 크고 내가 오랫동안 오해와 비방을 받으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하지만 그조차 주님의 긍휼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길이 달라졌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니 과거를 논할 필요는 더더욱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과거의 옳음을 증명하거나 다른 단체를 논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 것만을 기록하기 위함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이가 50이 되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실상 이사를 하기 전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확고한 결심을 하였다. 가자! 새로 시작하는거다! 나는 내 아내에게 어느 날 물었다. 그 교회 건물 6층 한 방에서이다. “당신 여기서 그냥 살고 싶어, 아니면 힘들겠지만 시골이나 혹은 서울 변두리라도 가서 작은 집에 살면서 새로 옆집부터 한 집 한 집 전도하며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나는 아내가 어떤 대답을 해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생에 가장 큰 결심을 하는 일이기에 확인하고 싶었다. 아내는 기다릴 것도 없이 즉시 답했다. “빨리 떠나고 싶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있던 그 교회에 머무는 7주간 성도들에게 고별 메시지를 전했다. 어떤 성도들은 진짜 떠날 것인가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지막 떠나는 주일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어떤 성도는 평소 나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였었는데(물론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신앙관에 있어서 내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말씀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는 나의 가슴에 안기더니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나 그들이나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나도 그들을 바꿀 수 없고 그들도 나를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7주간의 고별 메시지에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신다

이사할 때 나에겐 집 한 칸 얻을 돈이 없었다. 어떤 성도가 떠나는 나에게 1천만원을 헌금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3천만원이 모아졌다. 그것을 가지고 역촌동에서 건축하는 한 형제가 제공한 연립주택 7층으로 들어갔다. 나는 함께하던 성도들에게 나를 따라오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이사해서 새로 시작할 것이니, 그들과 다만 계속 좋은 교제를 갖자고 말했던 터였다.

그렇지만 한두 가정이 나를 따라왔다. 한 형제는 프랑스 파리에 그림 공부하러 갔다가 만난 형제이고, 한 형제는 그 교회가 싫어서 이미 시골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형제였기에 그들이 따라 오는 것을 말릴 수 없었다. 그 형제는 빨리 내가 그곳을 떠나지 않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하던 처지였다. 그러니 자연 세 가정이 들어가게 되었고 건축하는 형제는 나에게 연립주택 네 칸을 내주었다. 우리는 형제들과 돈을 모아 1억 정도의 돈만 주고 그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문제는 세 가정이 다 주님을 섬기는 자들인데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처럼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즉 나에겐 세 집 식구에다 우리 아이들까지 식솔들이 적지 않았다. 거기에다 외국 선교지들은 여전히 도와야 하고 선교사로 나간 형제들도 계속 공급해야 할 처지였다. 당시 매일 역촌교 다리 옆으로 난 산보 길을 따라 운동을 하면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 생각이 선하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식당에 앉아 오천 원짜리 갈비탕을 사먹는 것을 보면, 참 저들은 돈이 많은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주님이 공급해주실 것을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 식구들을 바라보면서 염려가 놓아지지 않았다. 나의 믿음 없음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마태복음 6장의 말씀이 쉽게 믿기 어렵다고 느낀 것도 그때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 그러나 또한 내가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지나고 나서 계산해보니 매달 적어도 수백만원이 출판을 위해 투자되고 있었고 외국의 선교사들에게도 항상 지불하는 물질이 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지금도 다 이해할 수 없다. 주님은 신실하신 분이며, 우리의 필요를 어떤 방식이든지 항상 부족하지 않게 돌보신 분임을 주께 감사한다.

유동근 목사는

대전고, 충남대·대학원, Pacific Theological Seminary(Th.M, D.D)
온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美 퍼시픽 신학교 교수
국제선교신학원(IMC) 학장
現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연합총회 총회장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Min GM Course
저서: 모세오경, 마태·요한복음, 로마서, 서신서, 요한계시록 등 강해서 총 20권

저자는 1991년부터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네팔, 미얀마, 에디오피아, 잠비아, 이태리,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선교를 주로 해온 선교사이며 복음전도자다. 위에서 소개되는 선교일기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지금도 매년 저자와 그 일행은 일년에 한 번 이상 세워진 교회들을 순방하며 진리의 말씀을 공급하고, 교회들을 굳게 세우며 전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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