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복음 사역과 하나님의 세계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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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교수]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15)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나사렛 예수는 당시 로마가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한 시대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다. 그의 메시지는 헤롯이나 유대총독이나 로마황제에게는 불손하게 들리는 내용, 즉 세상의 권력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로마는 이 지상에서 이루어진 제국이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평화의 왕국을 의미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나사렛 예수의 메시지는 로마의 통치와 평화를 부정하는 반체제적인 선동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나중에 빌라도에 의하여 반체제 선동가의 누명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세상 권력에 대항하는 반체제적 설교라기 보다는 이것을 넘어서는 하나님 통치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시고 통치하시고 심지어는 로마제국도 통치하신다는 메시지였다. 예수는 세상을 궁극적으로 통치하는 것은 인간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설교한다. 예수는 로마 황제 까지도 하나님의 통치 앞에 서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통치는 구체적인 그의 사역, 신체적으로 병든 자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강을 주시고, 영적으로 확장되는 실재로 나타났다.

질병을 고치심

예수의 복음 사역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체적인 질병의 치유였다. 마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막 1:32-33). 베드로 장모의 열병, 문둥병, 귀먹음, 눈멈, 중풍병, 혈루병 등 각종 난치병까지도 치유하셨다. 하나님의 통치는 질병을 치유하심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예수의 치유사역을 통하여 인간에게 신체를 주신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가장 중요한 일상적인 고통의 하나인 질병을 치유하신 것이다. 한국의 초창기 그리고 오늘날 복음전파에 있어서도 항상 치유사역은 뒤따르고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통치의 구체적인 모습인 것이다.

영혼을 고치심

예수는 육체의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병을 고치셨다. 우리의 죄를 깨닫고 사함을 받도록 하셨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달아 내린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하여 힐난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는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신다”(막 2:10)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고 명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간다”(막 2:12).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정신적인 것, 죄가 육체적인 것,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는 중풍병자에게 중풍병의 원인이 된 죄의 사함을 선언하심으로 그의 죄를 용서해주셨다. 그래서 그의 몸만이 아니라 영혼을 치유하신 것이다.

그리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잡아와서 판결을 묻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하신다. 고발자들이 하나둘씩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모두 사라져 버리자 예수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 8:11)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아니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권면하신다. 예수의 새로움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고차원적인 사랑과 인자의 법으로 완성시키는 데 있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시면서 율법을 정죄의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고 용서와 새로운 기회로 사용하시고 계신다. 그의 사랑의 법 안에서 율법은 정죄의 기능을 상실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사랑의 계기로 전환된다.

마음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통치(평강)

하나님 통치는 영적 실재이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이다.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과 안디옥과 소아시아 각 지역(고린도, 데살로니가, 빌립보, 에베소 등)에서 이룬 인격적이고 사랑의 공동체는 바로 지상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통치의 구체적인 실재였다.

예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마 15:19)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이러한 세상적인 탐심에서 벗어날 때 마음이 가난해진다. 천국은 오로지 그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소유할 수 있는 비밀의 실재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도덕적인 실재이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통치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 14:17).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거하는 구체적인 모습은 평강이다. 우리 마음 속에서 강과 같은 평화가 넘치고 마음 속에서 쉴사이 없이 하늘의 곡조가 흘러나오고, 외부의 환경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영적인 평강이 바로 그 구체적인 증거이다. 이 평강은 구약의 시편 기자들이 누렸고, 신약의 사도들이 감옥에서 누렸고, 교부시대와 종교개혁 시대 성도들이 누렸고, 청교도 시대 성도들이 박해시절 누렸고, 오늘날 중생한 성도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누리는 평강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보이는 물질적인 처소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눅 17:20이하).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 안에서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비(非)가시적인 것이며, 영적이며 정신적 도덕적 실재이다. 오늘도 죄인이 용서받고 새 사람이 돠고 헐벗은 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과 인자가 선포되고 실천되는 처소에 하나님의 통치는 구체적인 실재로 존재하고 있다.

확장하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이것은 날마다 복음의 능력으로 퍼져나간다. 그것은 이 세상 속에서는 하나의 작은 실재이다. 그러나 하나님 통치는 이 세상에서 도피한 공동체가 아니다. 하나님 통치는 이 세상 안에서 그의 부르심을 받은 중생한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영적 도덕적 실재이다. 종교인이요 바리새인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께 나아와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인정했을 때 예수는 그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쳤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중생한 자는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통치를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문을 여는 자들에게만 들어오셔서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니고데모는 중생의 도리를 듣고 그 날 중생의 경험을 하였다. 그는 이 세상에서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니고데모의 신앙은 나중에 확증된다. 예수가 후일에 십자가에 처형되어 누구도 예수의 시체를 찾아가지 않았을 때 그는 예수의 시신을 돌로 된 무덤에 안치한다. 이 용감한 행동 속에서 니고데모의 신앙은 확증된다. 그날 밤 중생의 도리를 깨닫고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했다면 그러한 용감한 행동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 통치의 실재는 사도 바울, 에디오피아의 내시, 고넬료,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슬리,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등 믿음의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공동체를 통하여 구체적인 역사적인 실재로 성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개개인의 마음 속에, 그리고 그 가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들이 만드는 교회공동체와 사회공동체와 세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확장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저 천국에만 머무는 고정된 공간이나 처소만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중생한 자들의 삶의 현실 속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지니는 역동적인 실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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