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본다. 우선 나부터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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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잡기장에서 (4)] 시드니우리교회 홍길복 목사

저에게는 잡기장이 몇 권 있습니다. ‘잡기장’이란 글자 그대로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이나 생각들을 그때 그 때마다 적어놓는 공책입니다. 이런 글들은 순서도 없고, 앞뒤도 없는 글들입니다. 대부분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거나, 책을 읽다가 메모해 놓은 것들이거나, 아니면 뜬금없이 생각나서 갈겨쓰다시피 써놓은 짧은 단상들입니다. 그러나 그냥 소설 읽듯이 빨리 읽을 것이 아니라 좀 천천히 읽고 생각해 보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44)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야만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야만적인 것들을 아름다운 포장지로 싸고 있을 뿐이다.
야만인과 문명인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오히려 야만인들은 정직이라도 했는데,
소위 문명인들이란 부정직한 죄까지 더하고 있을 뿐이다.

(45)말도 안 되는 소리에다 자꾸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질문에 대해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대답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자신 또한 그렇게 지혜롭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사람이다.

(46)사람들은 보통 중간 통제능력을 갖고 있질 못하다.
일단 시작한 일은 중간에 잘못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멈추질 못한다.
갈만큼 다 가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 본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일이 지나쳤다는 것을 발견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욕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나치면 나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놓치질 못하고 따라가게 된다. 마지막까지 감정, 분노, 욕망, 성욕, 식욕, 명예욕 다 채운 다음에 가서야 그때 비로소 “아! 이렇게까지는 가지 말아야 했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게 된다.

(47)미술의 역사에는 몇 가지 흐름이 있었다.
사실주의란 객관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인상파란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으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추상화란 주관적 느낌을 주관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초현실주의란 주관적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조형주의란 주관과 객관을 한 화면에 동시에 그려 보려는 노력이다.

(48)왜 주일은 이렇게도 빨리 찾아오는가?
핑계할 수 없는 일,
거부할 수 없는 일,
도피할 수 없는일,
설교란 그런 것이다.
그 초롱초롱한 영혼의 눈동자들에게
어떻게 내 이 더러운 인간이
신령한 눈맞춤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49)인간성(人間性)과 신성(神性),
사람에게는 인간성만 있고,
하나님에게는 신성만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인간성과 신성이 함께 계신다.
이 가장 고전적인 교의학을 다시 음미하면서
나의 인간성과 죄성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고,
나는 결단코 스스로는 나의 이 인간성과 죄성을
극복해 낼 수 없음을 깨닫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다.

(50)사진을 본다. 우선 나부터 찾아본다. “내가 잘 나왔나?”
그것부터 찾는다. “괜찮구나!” “그 사진 잘 나왔는데…”

어느 누구도 사진을 받았을 때,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부터 찾아보지는 않는다. 나만 잘 나왔으면 장로가 눈을 감았어도, 집사가 고개를 돌리고 있어도, 일단은 “잘 나왔는데 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랑, 사랑, 사랑을 말하긴 해도 사진 한 장을 보는데서도
인간의 이기심, 자기 중심적인 생각, 에고이즘(Egoism)은 여실히 드러난다. 언제 나는 사진 한 장을 받을 때도, 나부터 찾아보질 않고, “우리 장로님 잘 나왔나? 우리 권사님 잘 나왔나?” 그것부터 볼 수 있는 눈이 생겨나랴? 인간은 영원히 자기 속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벗어버릴 수는 없는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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