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환 칼럼] 용산참사에 눈물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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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
▲안희환 목사(예수비전교회).

철거 하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제가 살던 곳은 경기도 시흥군 소하읍 소하5리 500번지였습니다. 300여 세대가 살고 있던 곳인데 공교롭게도 주소가 모두 같았습니다. 따라서 우편배달부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워야 했습니다. 주소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로부터도 차별을 받은 동네였습니다. 개별 주소도 부여받지 못한 것이니까요.

제가 살던 동네의 집들은 판자로 두들겨 만든 집이었습니다. 안양천 옆 뚝방 옆에 나란히 세워진 판잣집들이었던 것입니다. 천지사방에서 실패하고 낙오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고 판자로 대충 두들겨 만든 집안에 살면서 설움을 삭이던 동네가 바로 제가 살던 곳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면 맞을 것입니다.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던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준비물을 못해가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버스 탈 돈이 없어서 비오는 날에도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습니다. 어쩌다가 집에 찾아온 친구들은 제가 사는 집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점차 찾아오는 친구들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릅니다.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외에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친구네 집에 가면 내가 사는 곳과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친구들 집에 어쩌다 가게 되면 부러운 것이 있었는데 집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집에는 화장실이 집밖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여러 집에서 함께 사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양쪽 트인 곳으로부터 화장실 안으로 찬바람이 가차 없이 쏟아져 들어왔고 급할 때 다른 집 사람들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으면 볼일이 끝나기까지 기다리느라 곤욕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방 하나에 여러 식구가 살려니 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작은 방 하나를 판자로 만들어서 숨통이 트였고 집 앞 쪽으로 약간 넓힐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사치였나 봅니다. 철거반에서 단속을 나오더니 새로 지은 부분을 철거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자 철거반원들이 직접 해머 등을 가져와 새로 만든 부분을 부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철거반원들과의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냥 살기엔 너무 좁은 집이기에 조금 넓히면 철거반원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찾아와서 부숴버립니다. 애걸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고 화를 내며 덤벼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저의 마음 속에서 뭔가가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최근에 용산 화재 참사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철거민들의 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번듯하게 자기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도 철거민들의 고통을 눈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면에서 철거민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신나를 왜 가지고 있었을까? 화염병을 왜 만들었을까? 왜 외부의 철거민 연합회 사람들이 끼어들었을까? 하는 것들입니다. 철거민들의 설움과 아픔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과격하고 폭력적인 것까지 용인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백성으로서 법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용산 화재 참사로 죽은 철거민들과 경찰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이 나라 안에서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쟁자나 적으로 보지 않고 한 동포요 형제자매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가뜩이나 땅이 좁고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서로가 물고 뜯는다면 더 이상 이 이 나라엔 소망이 없지 않겠는지요?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용산 참사를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검찰이 확실하게 조사를 해야 할 것이고 책임이 있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할 것입니다. 다만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죽은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를 받아 마땅합니다. 동일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책을 세우는 일에 전념해야지 참사를 이용해 나라를 더욱 어수선하게 만든다면 그는 나라를 망치는 매국노라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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