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정치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김영한 교수]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32)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역사적 예수는 가장 비정치적인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출생부터 정치적인 위협을 받았고,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다가 정치적인 죄목으로 십자가 죽음의 형을 받고 삶을 마감했다.

예수의 부모는 아들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출생지 베들레헴을 몰래 떠나 이집트로 도피함으로써 유대 왕 헤롯의 살해 시도를 모면하였다. 예수는 헤롯이 죽은 후에 유대로 되돌아와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라는 비정치적인 작은 마을에서 은둔하여 살았다. 예수가 지닌 메시아적 사명 때문이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증거했다. 예수가 증거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혀 세상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었으나 자칫하면 세상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오해될 수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이 세상 질서를 초월해 있기는 하나 이 세상 속으로 종말론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을 초월해 있으나 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모습으로 누룩같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성격 때문에 예수는 그의 공생애 활동 기간 중에도 유다 헤롯 왕, 로마의 식민 통치자들에게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정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올라가 복음을 전한다. 예수는 여기서 체포되어 제사장들과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그 머리에 가시 면류관(요19:2)이 씌어지고,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19:21)라는 정치적인 죄패를 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 탄생과 정치적 박해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

예수는 선지자의 예언을 따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이 때 동방박사가 도착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음으로써 헤롯왕을 놀라게 하였다.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 2:1-3). 예수는 탄생 시(時)부터 자신의 출생이 지닌 메시아적 성격 때문에 헤롯 왕가를 놀라게 하였고, 세상을 진동시켰다. 그 자신은 이 세상의 왕으로 나신 분은 아니었으나 세상의 박사들은 그를 유대의 왕으로 간주하고 경배하러 왔기 때문이다.

헤롯은 스스로 위협을 느꼈다

유대 왕인 헤롯은 왕으로 태어난 아기의 출생이 자기 권력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단순한 위인(偉人)의 출생을 넘어섰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온 박사들로 인하여 예수의 출생이 자기 왕가(王家)에 대한 도전이요 위협이라고 느낀 것이다. 헤롯은 별이 나타난 때와 장소를 알고자 한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 2:7-8). 헤롯은 자기 왕가에 대해 위협이 될 수 있는 이 아기를 살해하려고 의도하였다.

○ 헤롯에 대한 적대적인 관계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은 꿈에 메시아 아기를 살해하려는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리하여 이들은 헤롯에게 아기의 출생장소를 알리지 않고 다른 길로 본국으로 돌아간다: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 2:12). 나중에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분노한다. 헤롯은 메시아의 도래를 권력으로 저지하기 위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학살을 감행한다(마 2:16). 예수의 부모는 이집트에서 헤롯의 지시에 의한 어린이 살해 사건을 피하였다가 그 다음해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집트를 떠나 갈릴리 북동쪽에 위치한 유대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정착한다.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에서 많은 무리들은 예수가 행하신 복음 사역에 호응하여 그를 추종한다. 새로 즉위한 헤롯 왕은 이 보고를 받으면서 예수가 자기의 통치영역을 위협한다고 보고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다. 예수에게 호감(好感)을 가진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이 정보를 알려준다: “여기서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눅 13:31).

예수는 헤롯을 “여우”라고 지칭하면서 대답하신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 13:32-33). 예수는 새로 즉위한 헤롯 왕이 자기를 죽이고자 하나 자기의 길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해진다고 확인하신다. 예수는 자기 죽음의 장소는 예루살렘이며, 헤롯의 통치영역인 예루살렘 밖에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는 자신이 오늘과 내일에는 아직도 갈릴리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복음사역을 하고, 그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제3일”에는 부활하여 승천하여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미리 말씀하신다.

○ 나라와 정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 것은 하나님에게

복음서 저자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예수를 올무에 빠뜨리려고 시험한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마 22:17). 이것은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다. 세금을 바치지 말라하면 로마 정부에 반대하는 자가 되어 헤롯 당원들에게 고발할 거리를 제공하며, 바치라고 하면 로마 정부에게 세금 납부를 반대하는 유대인들, 특히 열심당원들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한다.

예수는 지혜롭게 대처하신다. 예수는 화폐를 가져오라고 하시고 거기에 쓰여 있는 형상과 글을 보시면서 이것이 뉘 것이냐고 물으신다. 제자들이 가져온 화폐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있으며 로마의 글이 쓰여 있었다. 예수는 이것을 보이시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예수께서 가이사의 통치를 인정하신 것을 시사한다. 가이사의 통치도 하나님의 주권적 위임(委任)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稅金)을 낼 것은 내어야 한다. 그러나 가이사가 넘겨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것”이 있다. 성전세와 십일조를 비롯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예수는 지혜롭게 대답하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예수는 빌라도에게 “나는 왕”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복음을 전파하시다 로마 가이사에 대항하여 민중을 선동한 죄목으로 고발된다. 예수는 체포되고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을 당한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고발된 예수를 심문하고 난 후 그를 백성들 앞에 세우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요 19:6).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려 하나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정치적으로 충동한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 유대인들은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예수에 대한 십자가형을 요구한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요 19:15). 이에 대제사장들도 합세한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

예수에게 붙여진 죄목인 “유대인의 왕”이란, 예수의 죽음이 갖는 정치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이 함축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

예수는 평화의 왕이요 메시아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는 정치적인 왕이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었고, 그의 메시아적 사역을 통해서도 한 번도 정치적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수행했던 것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라는 그의 말씀에서 예수가 분명한 메시아 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메시아적 사명과 사역은 그의 진정한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가이사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모반을 선동하는 자로 오해될 수 있었다.

○ 예수가 추구한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복음서 저자 요한은 재판정에서 유대 총독 빌라도의 질문에 대답한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 18:37). 여기서 예수가 자신을 지칭한 왕이란 이 세상의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가 증거한 나라는 이 세상 나라, 유대왕국이나 로마제국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예수가 증거한 나라는 칼과 창으로 빼앗고 쟁취하는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중세의 십자군 운동은 전형적(典型的)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실현하고자 오해한 중세 기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운동이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는 행정시책을 반대하기 위한 데모나 촛불시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세력과시를 위한 기도회나 파당(派黨)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무리들이 모인 집회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나눔과 평화의 운동이며, 사회적으로 약하고 소외된 자를 세워주고 이들과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파편적으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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