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벚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크게 알려진 벚꽃 축제만 해도 진해, 군산, 하동, 제주, 정읍, 경포대, 청풍호반, 섬진강 화개장터 벚꽃 축제 등이 있다. 서울에도 여의도와 워커힐 벚꽃 축제, 창경원의 밤 벚꽃 놀이가 있는데, 도심 생활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과 회복의 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 벚꽃이 사람들에게 이처럼 인기 있는 것은, 집단을 이루며 눈송이처럼 하얗게 또는 핑크색으로 피어오른 벚꽃의 모습이 대단한 장관을 이루어 사람들의 피로를 씻어주고, 자연의 살아있는 정취를 산속이 아닌 시내에서 만끽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려한 벚꽃을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것은 벚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벚꽃은 한꺼번에 피었다가 4-5일 뒤 한꺼번에 떨어져 버리는데, 구름처럼 피었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인생의 단면을 보는 것도 같고, 반짝 피었다 시들기 잘 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모습 같기도 해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에 반해 무궁화는 7월 초순에서 10월 하순까지 매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옮겨 심거나 꺾꽂이를 해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쉽게 죽지 않는다. 벚꽃에 비해 그 생명력이 매우 오래 간다. 우리 민족의 끈끈한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데, 무궁화라는 이름 자체도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벚꽃 신앙이 잠시 반짝하다 이내 시들고 마는 신앙이라면, 무궁화는 어떤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도 더욱 믿음의 꽃을 피우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도 말한 것처럼 전국적으로 벚꽃 축제가 열리는 곳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화임에도 무궁화 축제가 열리는 곳은 들어보지를 못했다. 단지 작년에 건국 60돌을 맞아 경기도 오산에서 무궁화축제가 열렸을 뿐이다. 무궁화가 벚꽃에 비해 그 존재가치가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근역(槿域)이라고 하여 무궁화가 많은 무궁화나라라고 불렀고, 애국가 가사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했다. 무궁화는 반만년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운명공동체로 함께 숨 쉬어 온 꽃이다. 만주, 상해, 미국, 유럽으로 떠난 독립지사들이 광복을 위한 구국 정신의 표상으로 무궁화를 내세울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은 무궁화 말살정책을 펴, 무궁화를 보는 대로 불태워 버리고 뽑아 없애 버렸다. 가혹한 그런 수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무궁화는 겨레의 꽃으로 계속 살아남았다. 마치 큰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운 신앙의 인물과 같이 오뚝이처럼 우뚝 우리들 앞에 섰던 것이다.
또 하나 다른 차이를 들면 벚꽃과 무궁화는 꽃을 피우는 인식체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벚꽃은 외부 온도에 따라 피우는 시기가 해마다 일정치가 않지만, 무궁화는 창조 시 정해진 밤과 낮의 길이를 알고 꽃을 피울 날짜에 정확히 꽃이 열린다. 변함없이 일정하다. 벚꽃 신앙이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흔들린다면, 무궁화 신앙은 외부의 환경에 관계없이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견고하다. 벚꽃과 무궁화의 특성을 통해 신앙을 살펴보았는데, 나는 어떤 신앙이라고 생각하는가? 벚꽃 신앙인가, 아니면 무궁화 신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