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과서, 의술 부분은 금성출판사보다 편향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특별기고] 고교 교과서에 나타난 개신교 서술의 문제점(5)

Ⅰ. 문제제기
Ⅱ. 현행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종교 서술의 구조와 개신교
Ⅲ. 한국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개신교 이해의 변화
Ⅳ. 근대문명의 유입과 개신교(1)

개신교의 출발만 국사교과서에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것들도 점점 과소평가되고 있다. 초기 교과서는 개신교의 역할이 비교적 공정하게 설명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축소되거나 삭제되는 경향이다. 이것은 소위 내재적 발전론의 영향을 받아 서구 영향을 축소하고, 민족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서양 의술의 도입에 대해 살펴보자. 1968년 국사교과서(이원순)는 “서양식 의료기술은 미국인 선교사 알렌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알렌은 우리 정부의 도움을 얻어 서양식 의료기관인 광혜원을 설립하였다(206)”고 기록하고 있다. 1973년(이현희) 교과서도 이를 계승하고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1885년 알렌이 서울에 설치한 신식병원인 제중원이 시초인데, 처음에는 광혜원이라 하였다(214).” 이는 1974년 국사교과서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1996년 교과서, 서양 의술 도입 정부가 주도했다고 바꿔

그러던 것이 1996년 제6차 국사교과서에서부터 다르게 설명된다. 여기서는 정부가 새로운 의술을 도입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정부는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고, 선교사 알렌으로 하여금 운영하도록 했다(118).” 과거에는 알렌이 주도하고 국가가 도운 것으로 기술했는데, 이후 정부가 주도하고 알렌이 정부의 계획을 따라 움직인 것으로 기술됐다. 최근에는 아예 이런 설명을 빼고, 단지 “서양 의학이 보급되면서 근대 의료시설인 광혜원을 비롯하여 많은 병원이 들어섰다(317)”고만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최근에 출판된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는 보다 분명하게 서양 의학의 도입이 조선 정부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서술한다. 이미 조선은 17세기부터 서양 의술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이러한 바탕에서 조선 정부는 선교사들을 적극 지원해 서양 의료시설을 운영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왕립병원이 설립됐다고 본다(124).

최근 한국 의사학회(醫史學會) 내에서 서양 의술의 도입 과정에서 알렌과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많다. 과거에는 알렌이 정부의 도움으로 제중원을 세웠다고 기술했으나, 일부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제중원의 설립 주체를 조선왕조라 이해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오래 전부터 서양 의학의 도입필요성을 갖고 있었고, 정부 지원으로 병원이 설립됐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사교과서, 세브란스 병원이 제중원 계승했다고 보지 않아

하지만 제중원이 세워진 결정적인 계기는 알렌의 제안 때문이고, 알렌과 그를 이은 선교사들이 실질적으로 서양 의학을 갖고 와서 병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서양 의술 도입은 알렌을 비롯한 기독교 선교사에 의한 것이라 말해야 한다. 제중원에 대한 이같은 서술 변화는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 사이의 뿌리 역사우위권 선점 논쟁이긴 하지만, 이런 논쟁 역시 배타적 민족주의 사관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다른 점은 세브란스 병원의 성격이다.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국립병원이므로 자신들이 제중원의 후예라고 한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은 제중원의 책임자였던 애비슨이 세브란스를 만들었고, 제중원의 모든 의료진이 다 세브란스로 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세브란스가 제중원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행 교과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세브란스를 독립병원인 것처럼 설명한다. 1968년 교과서는 1904년 미국인 세브란스가 사립병원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1973년과 1996년 교과서도 세브란스에 대해 제중원을 계승한 것이라기보다는 독립병원으로 보고 있다.

근대교육에 공헌한 개신교는 1970년대까지 긍정적 서술

그렇다면 국사교과서는 개신교가 한국 근대교육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1968년 출판된 이원순 교수의 국사교과서는 개신교가 근대 교육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먼저 한국 근대교육의 시조는 육영공원이었지만, 이것은 상류층을 위한 학교였다고 평가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근대학교 설립의 선구자는 1885년 설립된 배재학당과 경신학교, 이화학당 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서양 선교단체에 의한 근대교육의 영향을 따라 민족적 의식을 선양했다(202)”고 평가하고 있다.

이같은 평가는 1974년 나온 국사교과서에서도 계속됐다. “한편, 미국인 선교사 아펜셀라는 정부의 후원을 얻어 배재학당을, 언더우드는 경신학교를 세웠고, 이어 여자 선교사 스크랜튼에 의하여 이화학당이 세워져 여성교육이 시작되었고, 그 후 평양에 숭실학교가 세워졌다. 이와같이 세워진 많은 크리스트교 계통의 사립학교는 서양근대학문을 가르쳤을 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압박에 대한 민족의식을 깨우치는 구실을 하였다(189).” 여기서는 개신교 사립학교가 근대학문을 가르치고, 민족 의식을 깨우쳤다고 설명한다. 이 개신교 학교가 근대 학문과 민족 의식을 강조했다는 내용은 1996년 국사교과서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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