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나사렛 예수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김영한 교수]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39)

▲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초대원장).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남쪽으로 내려가신다. 사마리아와 유대 여러 동네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다. 예수는 이 기간에 70인 제자들을 파송하여 전도하게 하셨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마 20:17). 복음서 저자 누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눅 10:1).

예루살렘이 예수 전도 여행의 최종 목적지였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 예수가 갈릴리에서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수난주간을 보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마 17:22).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마 19:1). 그러나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 행적을 보다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예수는 사마리아를 경유하는 지름길로 가시는(눅 9:51이하) 반면, 베뢰아를 경유해서 돌아가는 길에 여리고로 지나가신다(눅 19:1).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의 동네 베다니(요 11:1)에 계시는가(눅 10:38) 하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계신다(눅17:11). 북쪽 갈릴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되나 예루살렘은 지형적으로도 높은 지역이며,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 된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의 사회적 상황은 그의 죽음을 예감하는 어려운 사정이 전개되는 즈음이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헤롯의 적대감이 커지고 있으며, 군중들은 예수를 알지 못했고, 심지어 3년 동안 자기를 따라 다녔던 제자들마저도 예수 복음사역의 목적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었다.

고조되는 바리새인의 적대감

예루살렘에서는 가장 종교적인 당파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에스라 느헤미아 시대의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자들이다. 이들은 율법 종교를 세웠고, 이스라엘 신앙의 수호자들이었다. 율법의 의가 바리새 신앙의 기본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이 주 목적이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은 갈릴리에서 올라온 예수를 저주받은 존재라고 했던가? 첫째, 나사렛 출신의 천민 출신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다. 예수는 아버지의 신분 계열로는 다윗의 후손이었으나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라났다.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서 공적인 율법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은 전혀 무명의 전도자 예수를 자기의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째, 예수가 자기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긴 율법 전통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귀하게 여겨온 모세의 율법과 이들의 전통을 깨뜨렸다. 바벨론 귀향 이후 유대교는 선지자의 영을 떠나서 하나의 율법종교로 제도화되어 버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지키고자 하는 수구주의자(守舊主義者)들이었다. 그리하여 바리새 종교는 영이 없는 문자만이 있는 제도적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예수는 화석화된 율법종교에 대하여 그 속에 송장이 들어 있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셋째, 예수가 자기를 하나님과 동일시하였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너무나 두려워하여 감히 하나님의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뿐 아니라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심지어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에 대하여 예수의 행위가 신성모독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고조하는 사두개인의 적대감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종교적 견해에서는 서로 달랐으나 이들 눈에 나타나는 예수의 신흥 종교운동을 제지하는 데는 서로 협력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두개인들은 다음 이유로 예수의 운동을 제지하고자 하였다.

첫째, 이들은 세속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들은 민족주의자들이었고, 산헤드린의 지도적 지위에 있는 제사장 집단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유주의자(自由主義者)들이었다. 이들은 종교를 정치의 한 부속물로 다루었다. 종교적인 권력을 잡은 자들로서 이들은 현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바랐다.

둘째, 이들은 유대의 율법은 인정했으나 전통은 부인했다. 이 전통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수시로 첨가해서 만든 것이었다. 더구나 메시아 사상을 부인하였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과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았다.

셋째, 예수의 새로운 민중운동이 로마 총독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염려하였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요 11:47-48).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53).

헤롯당의 고조하는 적대감

유대 분봉왕 헤롯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소식을 듣고 매우 당황해 하였다(눅 9:7). 그리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예수를 감시하도록 한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눅 13:31). 예수의 동조자가 와서 헤롯이 죽이고자 한다는 정보를 전해 받은 예수는 의연히 대처한다: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 13:32). “여우”란 간교한 헤롯을 지칭하신 말이다. 여기서 예수는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어 음부에 내려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제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군중의 몰이해

군중들은 처음에는 예수에 대하여 열광했으나 예수가 이들의 메시아적 기대를 저버리자 실망하여 떠난다. 그 많은 군중들은 떠나가고 얼마 남지 않았다. 복음서 저자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니라”(요 6:66). 군중들은 다음과 같이 이유로 예수를 떠났다.

첫째, 예수의 행태는 정치적인 해방을 해주리라고 기대했던 군중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이들은 로마로부터 유대 나라를 정치적으로 해방시키는 메시아를 원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군중들은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려고까지 했던 것이다(요 6:15). 이를 거부하는 예수에 대하여 군중들은 실망하여 떠난 것이다.

둘째, 군중들은 예수가 고난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종려나무 가지가 펼쳐진 가운데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 예수의 겸허한 예루살렘 입성을 보고 군중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군중들은 막상 예수의 입성이 왕으로서의 입성이 아니라 고난의 종이란 사실을 알고 실망하였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의하면 진정한 메시아는 고난의 종의 모습으로 와서 비천한 모습으로 구원을 가져오신다. 이것이 복음서 저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메시아 비밀”(Messianic secret)이다.

셋째, 군중들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알지 못했다. 이들은 예수의 영적 설교에 대하여 무지(無知)하였다.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이를 육신적으로 이해한 이들에게는 돌짝 밭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를 육신적으로 이해하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 복음의 적대자로 만든다. 세상의 질서에 속한 자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제자들의 몰이해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순교적 각오로 올라가는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신앙고백을 한 수제자 베드로까지도 예수가 고난의 종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신다”(마 16:21). 이를 듣고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가 예수를 만류한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이러한 제자들의 태도를 보고 예수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 하시고 베드로를 책망하신다. 이들 제자들은 예수가 나중에 잡히실 때 뿔뿔히 흩어져 도망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본래 자기 직업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던 자들이었다.

헤르몬 산에서 영적 체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대결심을 하신지 엿새 후에(마17:1) 예수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헤르몬 산으로 가서 기도하는 중 자기의 형상이 변화되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복음서 저자 마태가 이 장면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씀하는 광경을 본다. 수제자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서 예수께 청을 드린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 베드로가 말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에서 소리가 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이 목소리는 예수께서 요단강가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올 때 공중에서 들린 그 목소리이다. 성부의 목소리이다.

영국의 신학자인 제임스 스튜어트는 변화산에서 빛난 예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신비에 가득찬 명상, 영적 교제의 깊이, 영혼의 황홀, 높은 데서 흘러내리는 힘, 이런 모든 경험을 통하여 예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보다 더 빛났다”(James Stewart, 예수의 생애와 교훈, 203). 변화산의 영적 체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에게 영적 쇄신과 충만을 위하여 필요한 시간이었다. 구속이라는 위대한 사업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에 대한 준비와 깊은 헌신으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길로 나서는 예수

예수는 점차 적대자가 많아지는 것을 하나님이 작정하신 고난의 순간이 임박한 것으로 아신다. 복음서 저자 누가는 이 때 하신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 12:50).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막 10:32)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신다 (막 10:32):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막 10:33-34).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감으로써 예수는 이제 그의 선교의 종착지를 향하여 다가서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로만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박해와 거부와 고난과 헌신과 희생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중심지, 예루살렘

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만 했는가? 예루살렘은 여태까지 율법의 중심지요, 유대 종교의 센터요, 유대 정치문화의 센터요, 하나님의 옛 언약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새 언약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율법종교의 중심지인 그곳에서 예수는 화목제물이 되심으로써(롬3:125) 율법의 저주를 끝내고 은혜의 시대를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는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제물로서 드리심으로써 실현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고난의 종으로 죽으심으로 율법의 시대가 지나고 은혜와 복음의 시대가 도래한다(롬 3:22). 예로부터 선지자들은 이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되었다. 이러한 옛 선지자들이 갔던 고난과 죽음의 길을 예수께서 고난의 종으로서 마감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예수는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롬 5:17)를 그곳에서부터 전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예루살렘의 두 가지 모습: 율법의 도시 예루살렘과 은혜의 도시 예루살렘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4-26). 예수께서 올라가는 곳은 시내산으로 율법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으신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새 예루살렘을 세우고자 하신 것이다. 골고다에서 드린 예수의 희생을 통하여 옛 예루살렘은 은혜의 새로운 언약의 예루살렘이 된다. 이제 신령한 예루살렘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내린다. 새 예루살렘은 더 이상 지리적 혈통적 유대인의 예루살렘이 아니다. 그것은 신령한 예루살렘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오늘날에서 종말론적으로 내려온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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