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직으로 최고의 영예를 자랑하는 직분은 장관직이다. 영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와 특권도 쏠쏠치가 않다. 거기다 한번 장관을 하면 퇴임 이후에도 장관이라는 호칭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장관직을 선망한다. 그래서 그런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 “장관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은 의원은 없다.” 국회의원이 되면 장관에 발탁되기를 내심 다 기대하고 있다. 평소 장관자리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경멸했던 이어령 이대 석좌교수 같은 경우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초대 문화부 장관자리를 제의했을 때 “마음에 잔물결이 일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집에 찾아온 대통령비서실장이 수락한 것으로 알고 가겠다고 일어설 때 “안 하겠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장관직의 매력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장관에 임명됐을 때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지극하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선택해 임명하였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인정해 준 것이니 그 점에 감사하고, 또 장관이라는 직분이 주는 대단한 영예를 생각하니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 안동선 법무장관 같은 경우 장관 임명 소식에 “태산 같은 성은에 감사 드린다”고 했고, 2001년 2월 한명숙 여성부장관의 취임축하연에서 한 장관과 여성단체 간부들은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뻐했다.
그런데 교회의 직분은 어떠한가.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세상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직분을 맡겨주셨음에도, 장관직에 비해 교회 직분은 감사의 정도가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요즘 임직식을 보면 과거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절절한 감격을 느낄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을 보라. 딤전 1장 12절에서 자신을 충성 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 크게 감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격 없는 자신을 택해서 능하게 하신 후 사도의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 가슴 가득한 감사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에서의 직분은 자격과 능력이 갖춰진 사람에게 주어진다. 직분을 맡긴 다음 실력을 갖추도록 절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고위 직분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은 능력이 부족해도 가능하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직분을 맡기실 때 하나님께서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가.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된 것도 바울이 뛰어난 학자였거나 열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을 바울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던 것이다(고전 15:10).
집사 권사 장로의 직분은 세상의 그 어떤 직분보다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은 정말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이다. 그 지극한 은혜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 감격하고 있는가. 세상의 직분은 아침 이슬처럼 금세 사라진다. 80년대 이후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13.3개월로 1년을 조금 넘긴다. 그렇게 감사하고 감격한 장관의 자리지만 1년만 되면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은 그렇지가 않다. 설령 70세에 은퇴해도, 이 땅에서의 우리의 직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기에 그 직분은 영원하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직분자의 바른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