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수필] 진품과 폐품 사이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김호남 목사의 목양수필 ‘그분과 함께’

▲김호남 목사(시드니 샬롬장로교회).

▲김호남 목사(시드니 샬롬장로교회).

성경을 읽다 보면 상반된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정말 좋은 배경과 자질을 가진 사람이 참으로 어이없게 살다 간 이야기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스라엘 국가의 영웅인 다윗 왕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이란 걸출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세번째 아들로서 의협심도 강하고 출중한 미남자였으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차세대 지도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 ‘압살롬’이란 뜻은 바로 ‘샬롬의 아버지’, 즉 ‘평화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평화(샬롬)란 그냥 단순히 전쟁이 끝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뜻이 듬뿍 내포되어 있는 의미심장한 단어가 ‘샬롬’입니다.

그 샬롬은 피의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얻어지는 진정한 평화의 상태를 대표하지만, 거기에는 이사야의 ‘거룩’과 아모스의 ‘의’, 호세아의 ‘사랑’, 그리고 베드로의 ‘열정’과 바울의 ‘헌신’까지를 다 아우르고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샬롬’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인사말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이란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다윗은 이 아기가 피로 점철된 자신의 생애, 즉 피로서 간신히 세운 이 나라의 평화의 상태를 넘어 이스라엘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평화의 아버지’로 살게 되기를 희망하며 아버지 ‘압’자를 붙여 압살롬으로 이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빼어난 외모와 누구도 부럽지 않은 가문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이 비운의 왕자 압살롬의 생애는 그 부친의 기대나 뭇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연로하신 아버지를 대적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 하고, 결국 아버지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패주하여 안타까운 생애를 전장에서 마감하게 됩니다. 쉽게 우리 식으로 해석해 보자면 압살롬은 왕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으며, 빼어난 외모와 의협심뿐 아니라,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출중한 자질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국가를 위하여 내어야 할 ‘열심’을 잘못 다스려 자신을 위하여 ‘열심’을 내니 그것이 ‘욕심’이 되어 자신을 망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야 할 ‘헌신’을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위한 헌신으로 방향을 잘못 잡으니 그 헌신이 ‘배신’이 되어 나락으로 접어들다가, 마침내는 ‘명품’ 인생으로 살아 아버지의 기쁨이 되어야 할 인생이 급기야는 ‘폐품’인생으로 전락해 버리는 결산을 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런 왕자 압살롬의 생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얼마나 좋은 교육을 받았느냐?’ ‘얼마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리느냐?’가 명품인생, 진품인생으로 나아가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얼마나 자신을 학대하며, 부모를 원망하고 가족들을 부끄러워하는지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루었느냐? 얼마나 많이 성공했느냐?’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개의치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5-16) ‘많이 성취했느냐? 많이 알려졌느냐? 많은 대우를 받느냐?’ 하는 것보다는 우리 삶의 방향성이 주님을 향하여 바르게 방향지어 있다면, 혹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살아간다면,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냥 그대로, 성실하고 열심히 살기를 힘쓰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두 달란트 받아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많이 갖지 못하여 시작했습니다. 결과도 일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꼴찌도 아니지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그냥 들러리와 연극의 엑스트라 같은 역할이 그의 몫이었지요. 물론 이 비유의 핵심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게으름과 머리로만, 말로만 하는 신앙을 견책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의 자세를 주목해 보는 것도 상당한 위로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일등일 수 없고 일류일 수 없는 현실이 더욱 그 생각을 진하게 해 줍니다. 더욱이 이민 와서 남의 터에서 살아내어야 하는 이민자 크리스천들에게는 그런 아픔과 상실감이 좀 더 깊다고 여겨집니다. 열심히 사노라고 살지만,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갖지 못하고 더 높이 올라기지 못하며 더 앞서가지 못하는 적은 열매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하고, 사역이나 섬김에 회의가 들기도 하며 ‘내가 정말 제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자괴심에 흔들리기도 할 것입니다만, 주님은 열매의 다과에 연연하시는 분이 아니라, 열매 그 자체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그 방향 안에서 ‘샬롬‘을 누리며, 적지만 의미 가득한 진짜 진품 크리스천을 찾아 상주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좋은 배경이나 자질을 가지고도 자기 영달에 열심을 내다 폐품인생이 된 압살롬 같은 인생이 아니라, 적은 성취 속에서도 그곳에 나를 부르시고, 그 일에 섬기게 하신 그분의 부르심에 충직하게 서 있는 그런 사람을 주님이 찾고 계시지 않을까요? 아무도 눈여겨 칭찬해주지 않는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의 무언의 자리 지킴이 오늘따라 소중히 여겨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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