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인공호흡기 제거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독의사의 소고 (上)

최근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김모 씨의 가족이 낸 ‘연명 치료장치 제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확정한 가운데, 샘안양병원 박상은 전 원장이 이번 사건에 대한 기독의사로서의 견해를 밝혔다. 본지는 박상은 전 원장이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sangeun.co.kr/)에 올린 ‘인공호흡기 제거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독의사의 소고’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게재한다.

▲샘안양병원 박상은 전 원장.

▲샘안양병원 박상은 전 원장.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7·여) 씨 가족이 신촌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번 판결은 생명과 직결된 워낙 중요한 판결이며 그 파급효과가 지대하기에 신중히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 이후 각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환자보호자의 요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만도 세 명의 환자 보호자들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해 긴급 생명윤리위원회를 소집한 바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기독의사로서 꼭 고민해야할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과연 그 환자는 전혀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였는가?

이번 세브란스 환자의 경우, 과연 어떤 상태인가? 폐조직검사 도중 기도가 막혀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받아 8개월째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식물인간상태의 환자이다. 뇌간기능의 일부는 살아있어 자발적으로 눈을 뜨며, 통증자극에 대하여 팔다리의 반사적 반응이 존재한다. 뇌파가 뛰고 있으며, 신체감정을 한 의사의 증언에 의하면 뇌사는 분명 아니며, 회복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기대생존기간은 3-4개월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신경과 의사에게 조언을 받은 결과, 본인이 파악한 환자의 상태는, 1) 뇌사는 결코 아니다. 눈을 뜨고, 통증반응이 있으며, 뇌파가 뛰고 있다. 2) 회복가능성이 희박하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드물게 식물인간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경우도 있으며, 저산소증의 뇌손상인 경우도 뒤늦게 회복되는 예가 있을 수 있다. 3) 예상 수명기간은 3-4개월로 단정할 수 없으며, 경험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 그보다 훨씬 더 짧을 수도 있으며 훨씬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결국 절대 회복 불가능한 상태는 뇌사상태뿐이며, 이 환자의 경우는 100%로 단정할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되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 ‘뇌사에 가까운 상태’ 라는 모호한 표현은 자칫 판단을 흐릴 개연성이 있다.

필자가 얼마 전 KBS심야토론에서 같은 주제로 토론하는 가운데, 환자측 변호인단도 환자의 회복가능성이 5% 내지 15%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회복이 불가능한 뇌사상태가 아니며, 뇌의 상당부분이 기능을 하고 있는 상태로 상당기간 생존이 가능할 뿐 아니라, 드물게는 회복할 수도 있는 의학적 상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인 질환 역시 암이나 에이즈 같은 회복 불가능한 질환이 아니라, 검사 중 질식으로 일시적인 쇼크 상태 이후 뇌손상을 받은 경우인 것이다.

더욱이 회복 가능성은 다수결로 판단할 문제가 아닌 의학적 판단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 의식불명의 혼수상태 환자가 도착되어 5명의 의사가 진찰과 검사를 시행하였는데, 3명의 의사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명의 의사는 치료하면 회복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생명은 단회적이고 우주보다 귀한 소중한 것이기에 한 사람의 의사라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번 환자의 경우에도 주치의를 맡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에서는 회복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계속적인 치료를 주장하였으나, 타 병원 의사들의 판단에 무게를 두고 성급히 결정한 면이 있다. 타 병원의 의사들조차도 회복 가능성이 5%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1%의 가능성도 생명에 대해서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확률인 셈이다.

또한 대법원 판결에 있어서도 9명의 대법관은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했으나, 4명의 대법관은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한 명도 아니고, 네 명의 대법관이 모든 문안을 검토한 후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면 이는 비록 소수의견이라도 생명에 관한 문제인 만큼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야 할 사안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1심에서 4개월 이내 곧 운명할 것처럼 생각했던 환우는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지난 지금도 생명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둘째, 과연 그 환자는 스스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의사표시를 하였는가?

1) 직접적인 의사표현은 없었다. 2) 단지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독실한 기독교신자 2. 남편의 심장질환 치료시 기관절개술 거부 3.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는 언급 4. 수발 받는 TV장면을 보며, 저렇게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 있다는 보호자 진술 5.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성격 기타: 현재의 절망적 상태, 기대생존기간, 현재 나이 등을 고려

이러한 내용은 모든 분들에게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표현들일 수 있으며, 타인의 죽음에 대한 반응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다를 수 있다. 이에 반하는,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표현한 근거들을 찾아본다면 훨씬 많은 삶의 애착의 정황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환자는 그 어떤 명시적 의사표시를 한 적이 없고, 서면으로 이를 남긴 적이 없다. 단지 다른 환자 병문안을 갔을 때, 치료받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점과 평소 깔끔하게 살고자 했던 성품을 들어 마치 그와 같은 의사가 분명히 있었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증거들을 가지고 본인의 의사를 추정한다면, 모든 환자가 그에 해당하지 않을 환자가 없을 것이다. 그 누가 중환자실의 치료를 원하며, 그 누가 깔끔하게 살고 싶지 않으랴?

대법관 중 소수는 설령 원고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연명치료 중단을 구하는 원고의 ‘추정적 의사’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가 있는 경우에 명백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문건에 의해서만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를 추정하여 제시하는 것은 여러 정황 속에서 오용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본 판결의 다수 의견에 따른 대법원 판결은 여러 추정에 의해서 본인의 의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하는 판례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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