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소중함 놓치지 않는 ‘솔로몬의 지혜’ 기대한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인공호흡기 제거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독의사의 소고 (下)

최근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김모 씨의 가족이 낸 ‘연명 치료장치 제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확정한 가운데, 샘안양병원 박상은 전 원장이 이번 사건에 대한 기독의사로서의 견해를 밝혔다. 본지는 박상은 전 원장이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sangeun.co.kr/)에 올린 ‘인공호흡기 제거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독의사의 소고’를 세 차례에 걸쳐 나눠 게재한다.

▲ 샘안양병원 박상은 전 원장.

▲ 샘안양병원 박상은 전 원장.

셋째,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은 어느 정도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

생명윤리의 4대 원칙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이며, 이 중 환자의 자율성존중의 원칙은 악행금지의 원칙과 함께 가장 중요한 우선적인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즉, 환자가 모든 시술을 함에 있어서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에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원칙인 것이다. 암환자가 수술을 받을지, 항암제주사를 맞을지, 아니면 타 병원에 갈지, 이 모든 결정은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는 결정에 있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이다.

최근 자살의 문제는 심각하다. 노동자나 학생의 자살을 넘어, 세상에서 인기를 얻는 연예인과 부를 누리는 재벌, 나아가 최고 권력자인 전직 대통령까지 자살을 하는 현실이다. 이 모든 배경에는 자기 목숨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내 몸이 내 것인 것 같지만, 내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내 심장이 내 것이지만, 내가 아무리 멈추라고 외쳐본들 멈추지 않는다. 심장의 박동이 뇌의 명령을 듣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뇌사가 되어도 심장은 얼마든지 뛰기 때문이다. 심장은 하나님께서 뛰라고 하실 때부터 뛰기 시작해서 멈추라고 할 때까지 뛸 것이며, 우리는 그 가간동안 삶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생명을 누릴 생명권이지, 태어나고 죽는 것을 결정하는 생명결정권을 주신 적이 없다. 생명결정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연명치료의 중단은 회복불가능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분명 살고 싶어하는 의지(리빙윌)가 있다. 물론 때로는 죽고 싶은 생각(다잉윌)이 들 때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중에서 리빙윌이 우선된다. 아무리,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이라도, 말씀은 ‘이젠 죽어야지’ 하셔도, 실제는 살고 싶은 의지가 더 큰 것이다. 대전제는 인간은 살 의지가 우선된다는 것과, 생명을 중단할 결정권이 본인에게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리빙윌에 반하는 결정, 다시 말하면 다잉윌을 따르는 결정 내려야할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오늘의 논의는 이러한 대전제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일반적인 죽음의 기준인 심폐사는 누가 보아도 확인할 수 있는 죽음의 증거들이 있다. 하지만 뇌사는 전문가들에 의해서 판단되는 죽음의 기준이다. 가족들은 여전히 심장이 뛰고 따스한 체온을 여전히 느낄 수 있기에 선뜻 이를 죽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뇌사는 최종적인 죽음이 아니라,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표현이 분명한 경우에 한하여, 장기를 적출할 수 있다.

뇌사의 기준은 복잡하긴 하나,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분명한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즉, 14일간 기계에 의해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생명연장이나 회복은 전혀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문제는 심각한 뇌손상으로 인한 혼수상태이다. 상당수의 급성 뇌손상은 시간이 가면서 회복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식물인간 상태로 이어진다. 식물인간상태는 뇌사와는 달리 모든 뇌의 기능이 다 정지한 것은 아니다. 또한, 100% 회복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으며, 드물게 회복되는 경우가 있다. 소위 지속적 식물인간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 PVS)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세브란스병원의 환자의 경우도 뇌사상태가 아니라, 식물인간 상태인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에 한해 무의미한 치료중단에 대해 찬성한다. 1. 현재까지 의학적으로 밝혀진 회복 불가능한 상태는 뇌사인 만큼, 뇌사상태가 확인되는대로 더 이상의 기계적 장치에 의한 수명연장은 본인의 사전의사에 따라 중단할 수 있는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를 위해서 본인의 사전의서결정서는 입원 시에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아울러, 뇌사 시 장기를 기증할 것인지 여부도 함께 기록해 둔다면 효과적일 것이라 본다. 이러한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에 관해서는 정부가 최근 마련하고 있는 뇌사자 관리를 위한 예산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말기암환자로 확진된 상황에서 2명 이상의 의사가 회복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미리 사전의사를 표시한 환자에 한하여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에 뇌사 상태나 말기암환자가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 의학적으로 회복이 확실히 불가능한 상태가 정리된다면, 그 상태에 대해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이러한 논의가 법제화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존엄의 기준은 인간이 정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생을 영위하며 지속하는 것이 가장 존엄한 것이기에 오히려 <뇌사 및 말기암환자에서의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법>으로 명명하여야 할 것이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에서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본인의 생전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분명한 경우 중단할 수 있음을 허용하되 생명의 소중함은 결코 놓치지 않는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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