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가 이런 글을 썼다. “왜 사람들은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을까?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어서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발로 갈 수 있고 손으로 무엇이든 잡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 아닌가. 또, 소리가 들리고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 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에는 감사하지 않는다.” 인간은 특별한 것이 주어졌을 때에만 감사한다. 평범한 것도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는 그것을 잃었을 때야 비로소 깨닫는다.
얼마 전 기독교잡지에서 2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42일 동안 피랍되었다가 구출된 샘물교회 봉사대원들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루하루 겪어야만 했던 죽음의 고통에 대해서, 한 달 이상 같은 옷을 입고, 토굴에 갇혀 씻지 못하고, 화장실도 잘 못 가고, 감자 하나로 8조각으로 잘라 먹으며 벼룩과 벌레로 인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런 것도 고통이었지만 가장 큰 고통은 마음껏 찬송과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풀려난 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먹고 마시는 것이 또 얼마나 귀한 일인지, 전기 스위치 하나를 켜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도 ‘하나님! 맛있는 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밥을 먹다가 울컥할 때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자라면서 느낀다. 철이 없을 때는 부모님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철이 들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임을 깨닫는다. 믿음도 철이 들면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시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욥의 고백처럼 우리는 이 땅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욥 1:21; 딤전 6:7).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기에 순경 중에도 감사해야 하고, 역경 중에도 감사해야 한다.
일제의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5년 동안 옥중에서 고생을 하고, 나환자를 위해 일생을 바치다가 공산군에 의해 순교당한 손양원 목사님이 있다. 우리는 ‘사랑의 원자탄’으로 흔히 알고 있는데 손 목사님의 서신을 보면 ‘감사의 원자탄’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감옥에서 보낸 그의 서신들을 보면 감사의 고백이 절절하다. 손 목사님이 감옥에서 병든 아내인 정양순 여사에게 보낸 편지를 하나 소개해 본다(1943년 8월18일). “동인 어머니에게! 병고 중에서 얼마나 신음합니까? 이 같은 염천에 고열도 심하고, 게다가 병고까지 있으니 설상가상이겠구려. 그러나 믿음과 진리는 기후와 환경을 초월하니, 안심하소서. 꽃피고 새우는 시절뿐만 아니라 백설이 분분한 엄동 혹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하오. 금전옥루에서 잘 먹고 잘 살 때만 하나님을 찬미할 뿐 아니라, 초가삼간에서 못 먹고 병들었을 때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소서.”
그래도 감사해야 한다는 믿음이 구구절절 묻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된 신앙은 역경 중에서도 감사한다. 설령, 부와 명예와 권세와 건강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감사한다. 왜냐면, 세상 것은 모두 잃어버렸을지 몰라도 가장 귀한 분이 곁에 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신 주님께서는 택한 자녀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계셔서 악에서 건져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신다(딤후 4장).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