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종교 개혁 발자취 -번외편] 깔뱅 500주년이 갖는 진정한 의미
우리는 ‘100’이나 ‘1,000’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백주년과 새천년에 관련된 행사에 관심을 갖곤 한다. 하지만 깔뱅(칼빈) 출생 500주년의 ‘500’이라는 ‘숫자’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전혀 없다. 본질적 의미를 망각한 채 ‘500’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행사에 불과하다.
얼마 전, 쥬네브(제네바)에서는 미국깔뱅학회가 주도한 500주년 행사가 열렸으나 너무 과도한 등록비로 인하여 예상보다 저조한 인원이 참석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부랴부랴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입장하도록 하게 해서 미리 신청한 참석자들에게 원성을 샀다고 한다.
깔뱅 500주년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나 자신이 속한 단체를 알리려 하거나, 아니면 그 행사로 인해 실속을 챙기려 한다면 부질없는 상술에 불과한 것이다. 그 본질을 찾지 못한다면 죽은 깔뱅의 생일잔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떤 행사장에서는 인간 깔뱅을 지나치게 높여 ‘깔뱅 탄신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서, 깔뱅의 가르침보다 깔뱅이라는 사람을 우선시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가져 보았다.
‘숨은 1인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사람들
기자는 깔뱅과 그 후예들의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 다니면서 과연 500주년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당시 깔뱅과 그의 후예들 가운데에는 귀족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민으로서 자수성가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밀면 대우를 받고 어디를 가든지 평탄하게 살 수 있었던 실력가들이다. 그런 그들이 어느 날 도망자 깔뱅의 가르침을 듣게 되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위해 그 동안 고생하며 쌓아 올렸던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오늘날 이 시대가 보기에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교의 길을 선택한다.
언젠가 와이드 티비 화면을 소개하는 광고에서 “숨어있는 1인치를 찾아라!”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로 인하여 가톨릭과 개신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위그노들은 똑같아 보이는 그곳에서 ‘숨은 1인치’를 발견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죽어갔다. 그들이 찾았던 그 믿음이 과연 무엇이길래 그것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그 확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가?
그렇다. 그 ‘숨은 1인치’를 찾아 나와 우리 공동체 신앙에 접목시키지 않는 이상, 그 어떤 행사도 행사로만 끝나고 말 것이다. 최근 위그노들의 신앙의 흔적을 찾다가 문득 마태복음 13장 44절의 말씀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보화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소유를 더 소중히 여기나, 보화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갈등하지 않고 기쁘게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를 소유한다. 사도와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러했고, 또 위그노들이 그러했다.
‘세상’과 ‘영원’을 함께 소유하려 하는 것은 타락
그렇다면 깔뱅만큼이나 다시 조명되어야 할 것이 위그노들의 삶일 것이다. 위그노들은 바로 마태복음 13장 44절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 자신들의 성공과 안정됨을 포기한 진정한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의 권위가 왜 끝없이 추락하는가? 교회가 다른 길을 가르치고 있고,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은, 버리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다. 포기하는 자만이 영원한 것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도 감당할 수 없다.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세상’과 ‘영원’을 함께 소유하려는 신앙과 교회는 타락이며, 당연히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짓을 당할 것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으로서의 산더미같이 쌓인 일을 미뤄놓고 한 달의 피정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는 “내가 얼마나 죄가 많고 가치 없는 존재임을 깨닫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피정 기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나는 정말 그분을 아는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구원의 확신이 없어 이런 고민을 했을까? 주님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향한 반성이었을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나의 신분, 내가 사는 환경, 내가 받는 대접이 무의식 중에 나를 귀족으로, 이른바 ‘귀하신 몸’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참 슬픈 일이다. 일종의 귀족 의식이 나도 모르게 몸에 뱄다.”
바울 사도가 먼저 그러한 삶을 살았다. 빌립보서 3장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었듯이.
위그노들 역시 세상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묵묵히 걸어갔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의 신앙을 찾아 나 자신에게 가르치는 것만이 500주년 행사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그 ‘숨은 1인치’를 찾아 선진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비슷한 것은 비슷해 보이는 것일 뿐 본질 아니다
비슷한 것은 비슷해 보일 뿐이지 본질과는 다른 것이다. 신앙은 비슷한 것을 흉내내고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찾는 것이다. 한 공간에서 수십 명이 한 줄로 서서 말 잇기 게임을 해도 처음 전한 말과 나중의 말이 다르다. 하물며 500년 동안 다른 공간에서 깔뱅의 말을 이어왔다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그렇다면 돌아가야 한다. 그 처음으로… 깔뱅 시대로… 그리고 초대 교회의 신앙으로… 그리고 그 원천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아프더라도 잘라내어야 한다.
열왕기 시대에 분명 성전이 있었지만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왕들조차 쉽게 잘라낼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산당이다. 성전과 산당은 예배의 의식에 있어 비슷해 보이나 분명 다르다. 성전은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산당은 자기 열심과 자기 종교적 열성을 확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소원 성취와 복을 받아내려는 종교적 변질의 장소이다.
분명 산당 신앙은 하나님의 계시와 상관없는, 인간 열정으로 시작되어 자기 성취와 자기 안일을 얻는 것으로, 본질로부터 이탈하고 변질되었기에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될까?”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첫 순교자 쟝 발리에르는 수도사였지만, 루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비판한 죄명으로 산 채로 순교를 당했다. 홀렁 그헤스레(Roland Greslet)은 화형에 해당되는 일임을 알고도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성모 마리아 상을 땅으로 던져버린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잘못 알고 믿었던 자신의 과거 신앙을 던진 것이다.
청년 쟈크 뿌엉(Jacques Pouent)은 루터의 사상을 접하고, 그 책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다 체포되었다. 화형의 협박 앞에 젊은 그는 자신의 생각들을 철회한다고 말하고, 7년 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의 확신은 더욱 강력하게 되었고, 자신이 신앙을 철회한 어리석음에 대해 눈물과 애통함과 회개를 한다. 그는 1524년 10월 5일 피난 가 있는 기욤 파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당시 파리와 모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려주며 “하나님은 자신이 기록하게 하신 능력의 복음의 말씀이 세상 모든 곳에 펼쳐지기를 원하신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철회한 신앙을 다시 고백함으로 오늘날 파리 시청 광장에서 1526년 8월 28일에 화형을 당한다.
잘못된 현실을 내던진 깔뱅과 위그노 신앙처럼
이것이 깔뱅의 가르침을 받았던, 아니 성경의 가르침을 받았던 위그노들의 신앙의 모습이다. 위그노 신앙의 특징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잘못된 과거로부터의 단절을 시도하며, 나아가 깨달은 진리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지키는 삶이었다. 즉 그들은 잘못된 열심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잘못된 산당을 제거하는 일을 시도한 사람들이다.
부흥, 성장이라는 욕망으로 혹 이단적 요소가 있어도 눈 감고 묵인해 주는 이 시대 속에, 나에게는 성경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내가 만든 열심에 만족하는 산당은 없는지 돌아본다. 깔뱅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성경적으로 권면하여도 듣지 않을 때에는 그 오랜 우정도 단절시켜 버렸다. 기욤 파렐을 그러했고, 오랫동안 깔뱅을 도왔지만 로마 교회로 돌아간 루이 듀 띠에(Louis du Tillet)와도 그러했다.
잘못된 현실과의 단절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성모 마리아 상을 땅으로 던졌던 위그노의 신앙처럼,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을 본질인양 오도하고 지키려 하는 과오들을 과감히 던져야 한다. 그러한 결단만이 500주년이 가져다 주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프랑스 파리에서,
권현익 선교사